오피니언 중앙 시평

무관심이 갈등보다 무서운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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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 중 '세대 공감 old & new'라는 코너가 있다. 10대는 알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전혀 모르고 있는,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 낱말들을 출연자들이 맞히게 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주전부리' '자리끼' '터울' '너스레' 같은 말은 10대가 모르는 말이고, '열공' '지대' '지름신' '샤방' 같은 말은 기성세대가 모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열공'은 열심히 공부하다를, '지대'는 제대로를 줄여서 쓰는 말이고, '지름신'은 충동구매를 일으키게 하는 가상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샤방'은 환하게 미소짓는 모습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에나 세대 간의 이러한 차이는 존재했지만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 비중이 커지면서 그 정도는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차이는 갈등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래도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말 때문에 대화가 막혀버린다면 그것은 학습을 통해 극복의 여지가 남는다. 하지만 잘 알고 있는, 그래서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는 말인데도 그 말에 대한 인식의 편차가 크다면 보다 심각한 소통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이러한 갈등 상황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연정을 둘러싼 여야 간의 정치적 갈등이나 맥아더 동상을 두고 벌어지는 이념적 갈등, 성장 우선이냐 분배 중심이냐 하는 사회적 가치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나 주택 문제로 인해 확대.증폭되고 있는 지역적 갈등 등 다양한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갈등이란 관련자들의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합의의 실패 단계다.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특히 변화나 위기 상황에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갈등이 첨예한 대립의 해소를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상황을 통해 상이한 상대 관점을 이해하고 해결을 위한 전략을 고안해 적절하게 관리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의 합리적 조정이 늦춰질수록 정부의 정책 과정이 지연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며 더 나아가 국가의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갈등보다 오히려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귀를 닫아버리고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무관심이다. 첨예한 의견의 대립이 이뤄지는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존재하지만,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이 되면 소통은 단절돼버린다. 아니 소통의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현재 정부의 국정수행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회 전반에 편재된 갈등 양상에 지친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 것인가? 정부 입장에서 우선 국민의 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를 여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이 잘 모르는, 또는 잘못 알려진 대통령의 의중이나 주요 정책에 대해 홍보하는 활동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버거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다. 자신의 얘기를 잘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이해와 협력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이해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고, 일방적인 주장은 상대방에 대한 윽박지름이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념에 찬 대통령의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고단하고 피곤한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는 태도의 '진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갈등이 무관심으로 바뀌기 전에 말이다.

배 영 숭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