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도내는 공연 계획, 국제 망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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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음악 애호가가 손꼽아 기다리는 대형 콘서트가 잇따라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첫 내한공연이 공연 이틀 전 갑자기 무산되는가 하면, 한국 독립음악의 상징인 서태지가 다음달 열 계획이던 국제 록 페스티벌이 없던 일이 됐다. 일정을 확인하고 주머니를 털어 표를 예매한 많은 관객은 허탈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돈이다. 모리코네의 공연을 준비하던 기획사는 출연료 중도금을 지급하지 못해 모리코네 측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는 일방적 통보를 들었다. 일등급 자리 35만원을 매긴 입장권이 40% 정도 팔렸지만 기획사 측은 나머지 돈을 대지 못했다. 서태지 컴퍼니가 준비하던 록 페스티벌도 자금 부족 때문에 일정을 거둬들였다.

굵직한 국제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협찬이나 현찰 예매에 기대는 영세한 기획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획사가 무리하게 유치한 대형 음악회가 취소된 사례는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건이다.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동방신기 등을 엮었던 공연이 일주일을 앞두고 무산됐다. 브라질 삼바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부산의 한 기획사도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예매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국내 문제만이 아니다. 외국 공연단을 유치하면서 신용을 잃게 되면 다단계로 다른 기획사에까지 여파가 미친다. 한국 공연 기획사가 거짓말을 한다는 소문이 국제 공연계에 퍼지기 때문이다.

공연 기획 전문가는 이런 부작용이 최근 국내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탕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규모 공연으로 성공한 사례가 한두 번씩 나타나면서 신생 기획사가 자금력도 없이 쉽게 공연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기획이나 마케팅 연구는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뛰어든 공연 기획이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는 셈이다. 돈이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진정한 문화 기획자가 선보이는 공연이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