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장|조명인이 대국중 감기기침 잦자 후지사와,〃팬챦겠느냐 〃걱정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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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야, 축하하네』이틀간의 격전이 끝나고 승패가 판가름났을 때 늙은 패장「후지사와」(등택수항)가 새로탄생한 젊은기성 조치훈에게 던진 첫 마디였다.
17일 하오5시23분. 동경도 기미정정에있는 여관 후꾸다야(면전가)의 오으기노마(선지문)대국실이었다.
『몸을 깨끗이 닦고(생명을 건다는뜻)출전하겠다』고 비장한 결의를 보였던「후지사와」기성이 조용히 무릎을 끓었다. 「후지사와」의 축하에 조치훈은 머리를 긁적이며『별로 좋지못한 바둑이었는데…』하고 겸손한 자세를 보였으나 붉게 상기된 얼굴은 기쁨을 억제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조치훈승리」의 소식은 한일양국보도진들과「오오따께」(대죽영웅)9단등 전문기사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을 거쳐 순식간에 전파를 타고 밖으로 퍼져나갔다.
3연패 끝에 3연승한 조치훈이 최후의 한판에서 「후지사와」」를 꺾고 대역전극을 연출하느냐,「후지사와」기성이 7연패를 기록하느냐가 걸린 17일의 최종대국장은 아침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정각 9시를 5분 남겨놓고 조치훈이 먼저 대국장에 들어오고 3분늦게「후지사와」도 들어와 좌정했다.
조치훈은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은 듯 기침을했다. 「후지사와」가『괜찮은가』고 묻자『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형광등 불빚이 이상하게 보인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대국기간중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조치훈은 16일밤에도 잠을 설친채 이날 대국장에 임했다.
12시에 잠이 들었으나 웬일인지 새벽3시에 깨어 5시까지 못잤다것.
아침에는 여관에서 깨워주어 일어나 수프로 아침을 때웠다.
이날 바둑은 중반을 넘길때까지「후지사와」유리, 조치훈불리라는 분석이 나와 대기실의 보도진과 관전자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오 2시께에는 조치훈이 어렵겠다는 불길한 소식이 대국실로부터 대기실에 흘러나왔다.
이날 정오까지 이미 7시간 30분을 써버린 조치훈이 하오 2시 1백20수부터 어려운 국면아래 초읽기에 들어갔다는것.
실제로 종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해도 「후지사와」가 반면을 리드하고 있었다는 것이 국후검토에서 드러났다.
「후지사와」기성이 흑149, 151에서 패착을 하지않았으면 조치훈이 승리하기는 어려웠으리란 얘기다. 바둑이 끝났을때「후지사와」는『질만했으니까졌다』고 승부사다운 담담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날밤 그는 젊은 기사들에 둘러싸여 작년 11윌부터 끊었던 위스키를 두병이나 마셨다는 얘기다.
조치훈은 복기와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끝난후 몹시 피곤한 듯 자기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큰 나무는 풍우에도 꿋꿋이 버틴다. 나도 하나의 큰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한국의 바둑을 끝내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조치훈이 전에 했던 말이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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