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워진' 부시 … 유엔 총회 연설서 '호전적' 문구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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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렵고 중대한 순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유엔은 앞으로 평화수호기구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3년 전 부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기사찰을 수용하도록 유엔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그 며칠 뒤에는 "유엔이 제구실을 못하면 미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더욱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1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그는 "유엔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인류의) 원대한 이상을 담고 있는 기구로서 영원할 것"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워싱턴 포스트(WP)는 15일 "올해 부시의 유엔 연설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외고집의 언행과 호전적 문구들이 상당히 완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연설에서 유엔 개혁이나 무역장벽 철폐, 관세와 보조금 폐지 등 국제 이슈를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연설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을 가리켜 "세계인권선언과 권리장전 등은 모두 거짓말이며 이런 것들을 불태워 완전히 없애버린 뒤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었다.

WP는 그가 올해도 테러리즘 소탕을 강조하긴 했지만 직설화법 대신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테러리스트를 키우는 토양을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점잖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장을 기웃거리고, 각국 정상과의 식사시간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전에 없던 행동도 보였다. 이를 두고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잘못 대응해 국내에서 코너에 몰리고, 세계 각국에서 원조를 받는 상황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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