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반사적으로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물은 베란다를 채우고 거실로 넘치는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넘치는 물을 빈 김치통을 바가지 삼아 베란다 밖으로 퍼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물이 아닌 물 반 왕겨 반이 아닌가. 그 왕겨가 문제였다. 방충망에 끼여 물이 밖으로 잘 나가지를 않았다. 나는 방충망을 열고 "빨리 빨리"를 외치며 딸과 함께 불어나는 물을 퍼냈다. 숨이 턱에 찰 때가 돼서야 물은 조금씩 줄어들 기미를 보였다. 가슴이 벌렁벌렁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곧바로 경비실로 연락했더니 연결이 안 되고 급한 마음에 관리 사무소로 전화했더니 옥상으로 갔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우리 집에 생긴 건가 의심이 들어 막대기로 베란다 배수구를 쑤셔보니 뭔가 꽉 막혀 있었다.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닌 것 같아 옥상에 올라가 보니 방수공사 중간이라 왕겨와 함께 온갖 부속물로 아수라장이었다.
내 말을 흘려듣는 직원을 보채 집에 내려와 배수구 통을 분리해보니 더 기가 막힌 광경이 나타났다. 배수구 통로에 굵은 전선이 윗집 아랫집으로 꽉 차 있었고 부속물과 왕겨가 그 틈새를 꽉 채우고 있었다. 빗물이 흘러야할 배수구에 전선이 가득 차 있는 게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음날 관리소장에게 직접 와서 보라고 하니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선 봉지만 수거해 갔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조치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황당한 우리 집 물난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작은 물난리였지만 해마다 수해를 겪으시는 분들의 마음도 알게 되었고 이럴 때 수해를 입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았다.
이병란(44.주부.서울창동)
*** 9월 23일자 소재는 '가을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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