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 지장 없을 때까지 꽉 채워서 … 최대 4개월까지 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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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사례 1

서울 N초등학교 6학년생인 이모(12)군. 그는 1월부터 6개월간 학교에서 '가제적' 상태였다. 대신 그 기간 동안 캐나다의 한 공립학교에 다녔다. 어머니 우모(43)씨는 "당초 3개월간 보내려 했는데 아이가 적응을 잘해 6개월로 연장했다"며 "귀국 뒤 학교에 그쪽 학교의 출석.성적증명서를 제출하니까 제 학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 아이는 학원의 귀국 학생반에서 캐나다 교과서로 영어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사례 2

서울 Y초등학교 5학년 한 교실. 개학한 지 보름이 지난 13일에도 두 자리가 비어 있다. 6월 초 각각 호주와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난 학생들이 채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한 학생은 이번 주 중, 다른 학생은 24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학부형 이모(39)씨는 "학교수업을 빼먹어도 어학연수나 학원 방학특강은 챙기는 게 추세"라며 "심지어 해외에 나가지도 않은 아이가 방학 일주일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아 물어봤더니 학원에서 하는 방학특강을 듣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며 "겨울방학 땐 아예 외국 사립학교를 두 달 다니다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 교육인적자원부의 방학을 전후한 학생들의 출국실태 조사 결과는 공교육을 외면한 채 해외로 나가는 학생들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외로 나간 학생 중 적지 않은 수가 상급 학년 진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결석일수를 최대한 늘리기도 한다.

해외로 연수 떠나는 학생 가운데는 서울.경기 지역 학교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국한 학생 열 명 중 여섯 명(62.6%)은 서울.경기 지역 소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특히 서울강남(1146명)과 경기 성남(702명).고양(575명)의 초.중학생이 많았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4주 이상 외국에 머물렀다.

40명 이상의 학생이 해외로 출국한 학교 16곳 중 12곳이 서울 강남에 위치했으며 분당에 두 곳, 대전에 한 곳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한 명이라도 출국했다고 답변한 학교 수는 2939개였다. 전국 초.중.고교 1만509개교의 28%에 불과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방학 기간과 수업일수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 기간을 포함해 오랫동안 해외 연수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석일수가 많을 경우 유급을 시키는 것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것으로 상급학년에 진급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유급 등 수업 결손에 따른 불이익만 감수할 수 있다면 해외에 장기체류한다고 해도 다른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국내 영어교육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교대 영어교육과 임희정 교수는 "언어교육 측면에서 (어학연수 등의) 단기간 숙달 효과는 없다"며 "그러나 목표 언어에 대한 문화체험을 하고 두려움을 없앤다는 측면에서 어학연수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교육 기관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이런 체험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교육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 교육위 이인영(열린우리당) 의원이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어교사 연수 예산은 지난해 34억원에서 올해 21억원으로 줄었다. 영어캠프 예산은 참가 학생이 지난해 524명에서 올해 1398명으로 크게 늘었는데도 4억원에서 3억4000만원으로 감소했다. 이 의원은 "예산 감소는 결과적으로 수익자 부담으로 이어져 최소 20만~107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다"며 "지역별로 방학 중 해외연수자가 이처럼 차이 나는 현실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고정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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