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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블랙박스도 국제표준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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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박스는 오래전부터 항공기에 장착돼 속도, 고도, 방위 및 조종사의 음성 등이 저절로 기록되는 장치로서 비행기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데 사용돼 왔으나 최근엔 이러한 기술들이 자동차에도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전자정보 기록장치(EDR)라고도 하는 자동차 블랙박스는 차량의 속도가 얼마였는지, 방향지시등을 켰는지, 안전띠를 매고 있었는지 등 운전상태와 자동차의 거동정보를 저장해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또한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운전자를 보호해 이로 인한 사고를 줄일 수 있으며, 사고 지점이 바로 GPS를 통해 구조센터 등에 전송돼 구급차나 경찰을 급파하게 함으로써 교통사고 환자를 빨리 치료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어 최근 미국.유럽 등에서는 EDR의 장착을 권장하는 수준을 넘어 의무화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에서는 불량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회사를 방어하려는 방편으로 블랙박스를 이용해 왔으며, 경찰수사에서는 속도 위반이나 중범죄를 저지른 운전자를 적발할 때 이용하고, 보험회사에선 터무니없는 배상을 요구하는 보험 가입자를 가려내고 운전습관이 좋지 않은 가입자들에 대해 보험료를 달리 책정하기 위해 블랙박스가 필요하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

SA)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에서 운행되고 있는 2억대의 경승용차 중 15%가, 그리고 2004년 출시된 승용차의 65~90%가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유럽유엔경제위원회(UNECE)의 일반안전규정 작업반에서 향후 역내의 자동차에 블랙박스 장착 의무화를 위한 첫 번째 EDR 표준회의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프랑스.한국 등 6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열려 EDR 조사연구 결과에 대해 집중 논의가 있었다. 자동차 업체에서는 원가상승 및 인권 침해를 들어 반대했지만 국가와 소비자 입장에선 안전과 효율적 교통관리를 위해 필요한 전장품이라고 맞섰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서 유럽연합(EU)에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반드시 UNECE의 규격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므로 표준화 동향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06년 신형 버스에 블랙박스 장착을 시작으로 보급이 확대될 전망이므로 도로관리공단.보험회사와 운전자, 자동차 업체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 국가규격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는 국내 중소기업과 공동연구로 자동차 블랙박스의 표준규격을 작성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공식적으로 제안하고 이에 대한 각국의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브레이크 및 운전대의 지시등, 안전벨트 착용 등 운전상태, 차량속도, 방향, 전복시 자동차 거동상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이 국제표준 안건으로 채택되면 향후 많은 수정 보완 작업이 뒤따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나라가 프로젝트 리더가 돼 자동차 블랙박스의 기술 선점에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므로 국제표준을 감히 제안하게 된 것이다. IT분야의 강국인 우리로서는 잠재성이 매우 큰 새로운 기술 분야에서 밖으로는 세계 주도권을 가지고 자동차 산업에도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안으론 바른 운전문화 유도로 교통사고를 줄이고 사고의 시시비비나 급발진 등 원인 모를 사고 등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안종일 기술표준원 전기기기표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