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동북아 '평화'의 균형자가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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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논란이 많다. 한국이 미래의 동북아 지역질서를 염두에 두고 안보전략적인 차원에서 제시한 개념이기 때문에 국민과 세계가 호기심과 걱정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개념이 빈틈없는 장기 지역안보전략으로 격상되기 위해선 공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지금 국내에선 동북아 균형론에 대한 걱정과 찬성이 뒤섞여 있다. 걱정론은 힘의 균형의 입장에서 균형자론을 비판한다.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이 1위, 중국이 조만간 일본을 앞질러 2위가 되고, 3위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일본이 미.일 동맹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러.중.일은 군사력면에서 세계의 1, 2, 3, 4위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한.미동맹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 개념이 결국 한.미동맹을 금가게 하는 게 아닐까하는 것이 걱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정부가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설명을 간과하고 있다. 힘으로만 말하면 한국은 미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와 힘을 합해도 동북아에서 미국을 능가할 수 없다. 정부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나타내 본 적이 없고 북한의 남침과 위협에 대해 안보를 제공해 왔다는 의미에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힘의 균형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깔고 있다.

정부의 균형자론은 반미론자들이 말하는 탈미 동북아 세력 균형론이 아니다. 반미론자들은 미국이 동북아에서 사라지면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초강대국인 미국으로 하여금 동북아에서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한 국가의 안보전략이 비현실적인 가정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균형자론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한.미동맹과 동북아 균형론은 모순되지 않는다.

찬성론자는 한국은 100여 년 전 동북아의 지역강국들로부터 비참하게 국권을 빼앗기고 유린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동북아를 전쟁이 아닌 평화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침략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평화를 말할 도덕적.윤리적 우위에 있다고 본다. 동북아 국가 중에서 비핵화를 능력과 의지면에서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기 때문에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또한 21세기 중반에 바뀔지도 모를 지역안보구도를 예상해 중국이 지역패권을 추구하거나 미국에 기댄 일본이 중국과 대결하는 상황이 올 때 한국은 평화의 입장에서 평화를 더 지향하는 국가의 편을 들겠다고 함으로써 그 대결상황을 막고자 한다. 그래서 균형자론은 결국 평화를 위한 균형자로 되는 것이다.

평화의 균형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세움으로써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패권을 지양하고 평화협력을 추진하게 만드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을 지리적으로 연결시키는 한반도가 평화의 촉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맹목적인 힘의 대결보다는 평화를 위한 협력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보기술(IT)와 경제협력을 통해 지역경제협력을 이룩하고 안보면에서도 지역국가들이 평화의 입장에 설 것을 촉구하는 외교안보적 전략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균형자론을 힘의 균형이 아닌 평화의 균형 입장에서 보면 우리 국방부가 전개하고 있는 군사외교의 다변화를 바로 볼 수 있다. 국방부는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하고, 미국과 협의하면서 일본.중국.러시아와 군사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과의 군사협력은 공고하게 제도화되어 있다. 일본.중국.러시아와의 군사외교는 위기예방과 신뢰구축 차원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동맹을 튼튼히 한 가운데 전개되고 있는 다자 군사 외교를 힘의 균형외교 입장에서 보면 안 된다.

한국은 동북아 평화의 관점에서 일본이 미.일동맹을 이용해 야욕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미.일동맹에 상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중국에는 미래에 지역패권을 지향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명실공히 평화의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발전시키는 한편, 우리의 국력과 외교력, 자주국방 능력을 계속 길러가야 할 것이다.

한용섭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