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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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8일 오후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를 재해석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다음 작품은 TV 쇼 프로그램 형식을 따온 '말괄량이 길들이기'. 각각의 연극은 30분 남짓 공연됐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연출자는 쪼르륵 앞으로 나와 마치 면접 보는 수험생처럼 심사위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작품 의도가 무엇인가" "어떤 방향으로 공연을 진행할 예정인가" 등등.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대표 유인촌)이 올해 처음으로 시행하는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의 한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이 공연계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실연심사, 즉 직접 작품을 보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서울문화재단은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 문예진흥원)의 각종 공연 지원 프로그램은 모두 서류심사와 인터뷰만으로 이루어졌다.

아무리 사전 심사라 해도 한해 평균 수십억 원의 돈이 오가는 관 주도 지원의 프로그램에서 작품 없이 '종이'와 '말'만으로 우수 작품을 가린다는 것은 사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지원 작품이 훗날 무대로 올려졌다가 "수준 이하"란 말이라도 나오면 뒷말이 줄을 이었다. "누구 백이 작용했다" "어디 학교 출신이라 돈 받을 수 있었다" 등 심사의 공정성.신뢰성에 흠집이 나곤 했다. 실컷 돈 주고 뺨 맞은 꼴이다.

그래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실연심사의 의미는 각별하다. 심사에 참여했던 젊은 연출자 문삼화(37)씨는 "서류만 제출하지 않고 직접 공연을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실전을 경험하게 돼 유익했다. 탈락해도 아무도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인촌 대표 역시 "참가자도, 심사위원도 다 좋아한다. 앞으로 다른 지원 프로그램에도 실연심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가지 더. 채점표엔 작품성은 물론 사업 계획.관객 확보 방안 등 수익성 여부를 따지는 항목도 많았다.

관도 이젠 공연을 '예술'에 한정시키기지 않고 '산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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