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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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레이철 맥애덤스, 킬리언 머피
장르:스릴러
등급:15세
홈페이지:(www.nightflight2005.co.kr)
20자평:옆 자리 남자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숨막히는 상황, 그러나 다소 싱거운 결말.

옆 자리의 매력남이 알고 보니 살인머신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연착된다. 공항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미모의 호텔리어 리사는 매력적인 남자 잭슨과 마주친다. 비행기에 오른 리사는 세련된 매너와 유머감각을 보여줬던 잭슨이 바로 옆 자리라는 사실에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잭슨의 본색이 드러난다. 잭슨의 목적은 리사가 일하는 호텔에 머물게 될 정부관리를 암살하는 것이다. 암살에 성공하려면 호텔 VIP객실 예약 담당자인 리사의 협조가 필수다. 협조하지 않으면 대기 중인 동료를 통해 리사의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잭슨과 이에 맞서는 리사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이어진다.

"인간이 가장 무섭다"

"정말 무서운 것은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미치광이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 안팎에서 숱한 아이들을 악몽에 시달리게 한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나이트메어.1984년)를 창조한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뜻밖이었다. 신작'나이트 플라이트'(원제 Red Eyes)의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미국공포영화의 거물로 꼽히는 웨스 크레이븐(66.사진) 감독을 만났다.

감독은 "인간이 가장 무섭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인간이란 이성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극악무도해질 수 있는 양면적인 존재" 라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이라는 공포의 키워드는 '나이트 플라이트'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여주인공이 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좀 쉬어보려는 찰나 바로 옆 좌석에 앉은 멀쩡한 남자가 숨막히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줄거리다. 비행기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여주인공은 도망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비행기만이 아니다. 사무실.학교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도 정작 일이 터지면 전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9.11사태로 우리가 평소 얼마나 무방비 상태였는지 알게 되지 않았나.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지론을 바탕으로 감독은 공포영화의 독특한 효용을 지적했다. "현실에서 가능한 공포를 대리경험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주인공을 통해 대처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는 요지다.

감독은 "공포는 결국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했다. "왜 내 영화에서는 주로 여성 캐릭터가 괴롭힘을 당하느냐고? 공포영화의 본질을 강자의 억압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다.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더 약하면서도 감수성은 더 예민한 여자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이 훨씬 극적이지 않나."

온화한 외모를 가진 감독은 이력 역시 독특하다. 독실한 침례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영화가 아닌 영문학.심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5년간 서양 인문학을 강의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 덕분에 30여 년간 줄곧 공포영화를 만들면서도 장르의 관습에 매몰되지 않고 '스크림'(96년) 시리즈처럼 공포물의 뻔한 장치를 재창조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영화와 강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폈다.

"대학강의는 학생 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시간 넘게 졸지 않도록 이런저런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고, 즐길거리와 성취동기를 끊임없이 던져줘야 한다는 점이 영화 연출과 마찬가지다. 대학에서는 특히 그리스 신화를 많이 강의했다. 강단에서 가르쳤던 4000년 넘은 그리스 신화들이 내 영화에 반영되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그런 장치를 비웃기도 하지만, 신화가 다루는 요소는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다."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게 장기인 이 감독에게 제일 무서운 건 뭘까. "이제까지 다뤄온 소재 자체가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LA=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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