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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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에 명문대는 참 많다. 문자 그대로 교문이 훌륭한 대학들.
그러나 지금은 풍속이 바뀌고있다.「명문」이 아니라「명점」이 문제다. 바로 요즘 대학입학 원서접수 창구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어느 대학은 학력고사 3백 점 이상의 학생에겐 월30만원의 장학금을 준다는 상담도 있었다. 「대학」이 아니라「고용」이다.「명문」이 점수로 매겨지는 제도가 빚은 진풍경이다.
최근 외국의 어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았다. 에이시언 월스트리트저널지 (아시아 판 미 월스트리트저널)12윌 23일자에 실린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우등졸업생을·대상으로 한 출세 조사.
「우등생」의 기준은「베이커」장학생들.「조지·F·베이커」란 사람이 설립한 이 장학금은 최고성적자 15명에게만 준다. 약6백 명 가운데 15명이라면 보통 명예가 아니다. 이들의 장래는 장미 빛보다 더 진한 황금빛으로 번쩍일 만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지의 한 짓궂은(?)기자는 20년 전에 졸업한「베이커」장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취재목적은『이들 엘리트 그룹은 자신들이 그렸던 꿈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나』를 알아보는 것-.
우선 결론이 궁금하다. 취재 소감이 그것을 대신했다.
『미국 실업계에는 많은 야심적 관리들에게 공통되는 형광과 불륜과 좌절에 얽힌 일대 서사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등생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순수하게 학문적 지식만을 닦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성적경쟁에선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대학 울타리 밖의 세계는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다. 더구나 실업계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지는 권위신문 답지 않게(?) 충고 아닌 보다 리얼리스틱한「직고」를 하고 있다.
실업계에서 경영자의 지위에 이르는 길은 첫째 운, 둘째 타이밍, 셋째 모험하는 능력, 끝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를 갖고있는 것.
20년 전, 그러니까 60년대 초반에「베이커」장학생으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15명은 지금뉴 멕시코에 사는 어떤 사람(세계 생태학 조직의 일원)과 대학교수 2명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모두 축복 받은 편이었다.
그러나 장학생이 아니었던 다른 동료들은 어떤가. 바로 여기에 결론이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지는『똑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앙케트로 물은 수입명세서도 있다. 회답자의 48%가 연수 10만 달러 이상. 연수 50만 달러인 사람은 54%. 15명의 톱 가운데 톱이었던「존·더스틴」은 포드모터(자동차회사)조립본부 부 본부장.
그럼 명문대도, 우등생도 소용없다는 말인가. 이 해답은 또 하나의 질문에서 찾자. 운과 타이밍, 모험 능력, 친구, 이것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 그 동안「운」싸움에 지쳐있을 대학 지망생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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