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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안 낳는다" 탓하지 말고 출산·육아 현실적 지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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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백로(白露)부터 추석까지를 포도순절(葡萄旬節)이라 했다. 이는 포도의 탐스러운 상징성 때문에 생긴 전통이 아닌가 한다. 주렁주렁 달린 잘 익은 포도송이는 후손이 많은 다복한 가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포도순절에는 자손들에게 다산을 장려한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다. 첫 수확한 포도는 그 집의 맏며느리가 다 먹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처럼 많은 후손을 얻는 것이 예전에는 경사였건만 요즘엔 다산을 상징하던 포도순절의 전통이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예비군 훈련장까지 찾아와 산아제한 시술을 해주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는 세 자녀를 갖는 것은 경사라기보다 무식한 부모쯤으로 오인되기 쉬웠다. 셋째에 대한 차별은 그뿐 아니다. 병원에서는 셋째 아이부터는 보험혜택이 없었고 직장에서는 교육비 지원도 없었다. 그랬으니 셋째 아이는 기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산아제한으로 이웃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게 되었다. 급기야 출산율 1.16으로 세계에서 산아제한에 최고로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2019년이면 노령인구 비중이 15%에 달해 고령사회로 들어간다. 고령사회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정교한 인구정책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몇몇 정치인의 임기응변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인구 문제는 전략적인 정책이며 민족의 흥망이 달렸기 때문이다. 당장 가정마다 자녀들이 많아지면 그들의 부양문제가 대두된다. 특히 양육비뿐 아니라 교육비와 주택에 대한 문제가 뒤따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 평균소득 이하의 가정은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를 지원해야 한다.

목민심서 애민육조에 "과년하도록 혼인을 못 한 사람은 관에서 성혼시키도록 서둘러 주어야 하며, 백성들이 곤궁하게 되면 자식을 낳아도 거두지 못하니 이들을 타이르고 길러서 내 자식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결혼이 어려운 자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도록 한 선조의 지혜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행복하게 태어나고 잘 자라도록 국가에서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우선 아이들을 낳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며, 가족이나 사회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와 진정으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 그리고 과거 산아제한 때 가진 무의식적인 편견을 털어내도록 해야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주거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 자녀들이 많으면 주택 구입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세 자녀 이상을 부양할 때 임대주택 공급이나 주택분양이 우선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다산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자녀가 많으면 가정경제가 문제이기 때문에 세 자녀 이상의 부모들에게는 재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우선해야 한다. 또한 셋째 아이부터는 교육 관련 보조금도 현실적이어야 하며 상향 조정이 필요하고 공공시설 이용에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년부터 모든 산모에게 2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보다 먼저 셋째 자녀부터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국가에서 적극적인 지원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미달하는 가정의 아이에게 매달 일정액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예산이다. 출산율이 평균 2명 이상이 되기까지엔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까지 정부 예산을 해마다 조금씩 늘려 가야 한다.

정종기 성결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