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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정당 해산 사문화 … 헌재, 분단 특수성 내세워 판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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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03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통진당 해산 이후] 헌재 선고에 상반된 시선

 헌재는 결정문에서 “통진당의 해산이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은 다른 논쟁을 낳았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정당이라 해서 제도권 정당을 국가권력이 ‘공중분해’시키는 게 합당한 것이냐는 물음이다. 헌재도 이런 논란을 잘 알고 있었다. 347쪽에 달하는 결정문 곳곳에는 그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정당 해산은 최후 보루로 남겨둬야”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정당해산 제도를 두고 있지 않거나 사문화(死文化)한 경우가 많다. 독일이 연방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마지막 결정은 반세기 전, 냉전시대인 1956년(독일공산당)에 이뤄졌다.

 국가권력에 의한 정당 해산은 대체수단이 없을 때에 최후의 보루로 남겨둬야 한다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론이다. 국민주권주의를 채택하고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현대 민주국가에선 일탈된 정당이라 해도 유권자의 선택(선거)에 맡기거나, 정치적 공론의 장(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걸러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통진당 해산 의견을 낸 8명의 헌법재판관은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이 대표 집필한 결정문에서 ‘일반론’에 배치되는 결론을 내린 과정의 고민을 드러냈다.

 결정문은 “우리의 경우 정당해산 제도는 발생사적 측면에서 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된다”고 썼다. 우리나라의 정당해산 제도가 원래 정당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헌법학계 주류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

 동시에 헌재는 분단 상황인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주목했다. 결정문은 “(우리나라의) 이념대립 상황은 오늘날 세계의 보편적 상황과 상충된다”는 말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해산에 대한 일반론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간 통진당 주류세력이 연루된 공안사건, 내부문서 등을 종합해보면 이들이 우리나라의 헌법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폭력적 수단으로 체제를 전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통진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는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 내렸다.

통진당·나치당 비교는 논쟁 소지 다분
결정문 곳곳에선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표현이 눈에 띈다. 결정문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 장이 적절하게 작동함으로써 그 정당의 정치적 위험성을 상당 부분 견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중대한 위험성을 지니는 것이라면 정당해산 제도의 예방적 성격에 비추어 정당해산의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정당해산 제도가 정당보호 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론 과정에선 그와는 달리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을 근거로 삼은 셈이다.

 정당해산 심판은 우리나라 헌재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했다.

 이 짧은 문장의 해석을 놓고 지난 26년 동안 헌법학계에선 많은 논의를 벌였다.

 정당해산에 관해선 두 가지 법리(法理)가 섞여 있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견해는 달라진다. 첫 번째는 정당해산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이론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라 불리는 이 이론은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거두였던 루이 생쥐스트가 말한 ‘자유의 적에겐 자유가 없다’는 말로 대표된다. 두 번째는 ‘정당보호’ 이론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집권당이 자의적으로 반대파 정당을 해산시킬 가능성에 대비해 정당해산 요건을 엄격하게 한다는 의미다.

 두 정당해산 이론은 대립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 관계다. 헌법학계에선 사회마다 역사적 경험에 따라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 공론의 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주권자인 국민이 그릇된 결정을 한 경험을 지닌 사회, 혹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선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이 우위를 점한다. 선거로 전체주의 정당인 나치당의 합법적 집권을 경험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반면 장관급인 공보실장의 등록말소 처분만으로 당을 해산했던 진보당 사건(1959년) 등 정권의 야당 탄압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선 정당보호 이론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해석이 많다.

 헌재 결정문에선 다소 무리한 논리 전개도 발견된다. 헌재는 20~30년대 나치당의 집권 과정을 예로 든 뒤 “비록 피청구인에 대한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피청구인의 진성당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는 하나…언제든지 정치적 기반의 확대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는 앞서 본 나치당의 전례에서도 확인된다”고 했다.

실제로 체제 전복 꾀했는지도 논란 거리
헌법학계에선 통진당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법리적 완결성을 일부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나치당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경제적 상황, 패전국으로서의 국민의 자괴감 등이 결합되면서 유권자의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현재 우리 사회와 통진당의 현실을 나치당과 동일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향후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건 현존하는 북한과 동조세력의 체제위협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등을 지낸 공안검사 출신 안창호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소위 대역(大逆) 행위”라고 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의 변호사는 “왕조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대역행위’란 표현이 법률가가 사용할 만한 용어인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내 극단세력의 위험성을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RO조직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내란선동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했다.

 현행 헌재법은 정당해산심판에 민사소송법을 준용토록 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형사소송법에 비해 증거주의 원칙이 완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상희 교수는 “현행법이 민소법을 준용토록 돼 있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위법하진 않을지 몰라도 정당해산심판과 같은 중요 결정에 있어 민소법 준용이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유타 림바흐(80·여) 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1994~2001)은 “안정된 민주주의에서 그 적(敵)을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공론의 장과 선거에서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재는 60년대 이후 정당해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001년 연방정부가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연방헌법보호청(독일 정보기관)이 당내에 정보원을 심어둔 사실이 드러난 뒤 연방헌재는 절차적 문제를 들어 심리를 중단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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