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에 찢긴 미국] 겉으론 "지원 약속" 속으론 "자업자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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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미국에 세계 각국이 앞다퉈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4일 현재 지원 의사를 밝힌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0개국이다. 유엔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도 석유를 비롯한 각종 물자를 대기로 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영국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미국을 돕겠다"고 밝혔다. 호주가 750만 달러, 중국이 10만 달러를 내기로 약속했다. 일본은 미 적십자사에 20만 달러를 기부하고 천막.발전기.물탱크 등 구호장비 30만 달러어치를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적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와 닛산이 각각 500만 달러와 50만 달러를 쾌척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지원 의사를 밝혀 눈길을 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100만 배럴, 통조림 50t, 식수 20t, 담요 5000장 등을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지난해 말 지진해일(쓰나미)로 큰 피해를 본 인도가 500만 달러를, 스리랑카가 2만5000달러를 낸다.

그러나 카트리나로 찢긴 미국을 바라보는 각국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자업자득'이란 냉소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독일 잡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3일 카트리나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 '미국, 카트리나 재앙 계기로 지구 온난화 방지 필요성 절감해야'라고 제목을 뽑았다. 기사에서 위르겐 트리틴 독일 환경장관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환경정책이 결과적으로 카트리나 대재난을 초래했다"고 통렬히 비난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목표치를 정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매몰차게 거부해왔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재앙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모르는 미국에 대한 신의 경고"라는 표현도 썼다.

이탈리아의 유력 환경단체인 '레감비엔테'는 "카트리나 재앙은 9.11 테러에 견줄 만한 드라마틱한 사건"이라며 "미 행정부는 환경정책을 즉각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지금처럼 해수면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 매년 미 대륙을 향해 북상하는 허리케인의 위력도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환경기구에 따르면 20세기 지구 온도는 섭씨 0.7도 올랐고, 이에 따라 해수면 온도도 섭씨 0.6도 상승했다.

50만 달러를 긴급 지원키로 한 일본도 냉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와마 구이치 와코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카트리나로 인해 앞으로 상당 기간 고유가 행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돼 있어 배럴당 70달러까지 올라가도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미국은 한동안 적잖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사히와 요미우리 신문도 이날 "과거에도 수차례 카트리나급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낮은 수준의 치수 대책을 고집한 루이지애나주 정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재난방지 대책에 있어서는 일본이 미국보다 몇 수 위"라고 꼬집었다. 한 이슬람 웹사이트는 4일 "카트리나는 신이 우리 편에서 싸우라고 파견한 전사(戰士)"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신홍.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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