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없는 통계 숫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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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년 가을쯤의 일이다. 우리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7%정도를 전망하고 있을 때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모국의 대사관 측은 잘해봐야 5%밖에 안될 것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우리의 당국자는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당국자는 그대사관의 발설자를 직접 만나 7%성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우리 정부의 전망 내용을 자신 있게 설명하면서 그쪽의 비교론이 대체 무얼 근거로 한 것인가를 따지고 들었다.
무슨 선진적(?)인 이론이라도 들고 나오면서 반격을 가해 올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그쪽의 이야기는 자기의 「감」 이라는 궁색한 설명이 아닌가.
높은 코를 납작하게 눌러 붙인 우리의 당국자는 그제야 반분이라도 화가 풀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꺼림칙한 점은 그들이 어딘지 모르게 우리 통계를 미심쩍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우리의 당국자도 과거에는 다소 부끄러운 점이 있었던 것을 시인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처구니없는 쌀 통계가 그랬고 좋은 통계는 크게 PR하는 반면 나빠지는 숫자는 감추기에 급급했었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통계는 눌러서 삐져 나온 피부물가에는 아랑곳없이 안정세를 구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이야기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쌀통계도 크게 개선되었고 수출도 무리하게 목표 달성에 매달리지 앉는다. 통계숫자가 좀 나쁘게 나타나더라도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당국자는 깔보는 태도의 코 큰 친구를 만나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한가지 일은 옥의 티였다. 작년 한해동안의 물가통계를 발표하면서 경제기획원은 연말기준만 내놓고 연평균으로 얼마 올랐는지는 쏙 빼버린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즉 소비자 물가가 연말기준으로 따져 4·8%밖에 오르지 앉았다는 이야기만 했지 7·3%가 오른 연평균 숫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실제 현실물가를 반영하는데는 연말기준보다 연평균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오던 기획원이 이번에는 이것을 빼버린 것이다.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연평균상승률이 얼마인지 물었다. 『컴퓨터에서 집계가 안 끝나 알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사실 컴퓨터 이야기만 나으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컴퓨터에 대한 외경심이 랄까. 그 쪽에서도 그것을 노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연평균 상승률이 무슨 복잡하고 대단한 계산이기에 컴퓨터 신세까지 져야 한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필산으로 해도 될 것을-.
마감시간이 다되어서야 7·3%라는 숫자를 얻어냈다. 컴퓨터 핑계는 명백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고 결국 나온 숫자를 감춘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말기준인 4·8%보다 연평균기준이 7·3%로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더우기 지금까지 물가가 안정되어 은행금리8%(세금 제외하면 6·8%)로도 실질금리는 2∼3%쯤은 충분히 보장된다고 역설해 온 정부로서는 7·3%의 소비자물가통계가 영 떨떠름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부끄럽던 구태·구습의 하나가 아닐까.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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