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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의 '오늘 미술관'] 이 땅의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입력

외양간에서 태어난 아기는 보자기에 폭 싸여 있다. 갓 쓴 요셉이 옆에 서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동네 아낙들이 산구완을 위해 음식상을 차려들고 찾아왔다. 이 정겨운 풍경 한가운데 빛이 반짝인다. 마구간 대신 외양간, 목동 대신 아낙들, 그리고 한복 입은 마리아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이 붙들었던 우리식 성화(聖畵),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이다. 운보는 “때는 6ㆍ25 전쟁의 가열로 온 민족이 고통의 나날을 보냈던 1952년 전북 군산의 피난처였다. 나는 군산의 처가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화필로 달래며 어서 이 땅에서 전쟁이 끝나고 통일된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본 바 있다.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 속죄양이 되기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한 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52년 전 전란을 견디던 운보에게, 우리 민족에게 이 토착화된 성화가 위로가 됐듯,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러하길 소망한다. 운보의 성화 30점으로 구성된 전시 ‘오, 홀리 나잇!(O, Holy Night!)’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내년 2월 15일까지 볼 수 있다. 성인 9000원, 3∼7세 3000원.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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