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동결 등 선행돼야|저물가·저금리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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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는「강력한 정책의지」로 전에 없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의 고삐를 더 한층 다잡겠다고 나섰다.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리까지 낮춰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매우 의욕적이다. 이러한 안정 정책의 강화는 무엇보다도 올해 물가상승이 기대이상으로 낮았고 또 이에 자신을 가진 고위층의 정책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 물가가 당초 전망보다 더 안정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여건으로서 정부당국은 원유와 국제 원자재가격의 하락 추세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 가지고 2∼3%포인트나 물가를 더 떨어뜨릴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결국 이 같은 정책의지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우선 당장 뽑아 든 카드가 공공요금의 전면동결이다.
당초 계획대로 평균 5%정도 공공요금을 인상할 경우 이것만해도 물가에 미치는 요인이 1.3∼1.4%가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 강경한 물가안정책을 들고나선 마당에 공공요금을 올린다면 정부의 체면에도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계획대로 낮아지면 자연 예산 쪽에도 다시 손질이 가야한다. 어림잡아 물가가 1%낮아지면 세수가 5백억원 가량 줄어드니까 쓰임새도 상당액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장과 국제수지 등 경제전반에 걸쳐 저물가-저금리 체제구축에 따른 재조정이 예상된다.
이 같은 번거로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강력한 정책의지」임을 누누히 강조하면서까지 물가와 금리를 더 낮추겠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국제경제력의 강화에 있다고 김준성 부총리는 설명했다.
금년 중에 대내적으로는 물가안정에 성공했으나 경쟁상대국인 일본이나 싱가포르·대만의 물가수준에 비하면 그래도 높다는 것이고 금리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낮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딜레머에 빠져있는 수출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매우 바람직한 접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같은 상징적인 정책이 현실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가 문제다. 공공요금의 동결책 만해도 그렇다. 정부 스스로가 인정하는 인상요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소시키지 못한 채 목표 물가를 달성하기 위해 묶어버린다면 그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가는 그 사회의 능률의 척도다. 따라서 꾸준히 참을성 있게 추진해야지 성급히 이룩하려해선 안된다.
또 목표를 정해놓고 펴는 물가억제정책이 늘 그렇듯이 모든 가격을 목표치에 맞춰 무차별적으로 억제할 경우 78년 이후 비싼 댓가를 치르고 해냈던 가격현실화 노력은 다시 무위로 돌아갈 우려도 있다.
현실적인 마찰은 금리 쪽에서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천명대로 금리를 물가에 연동시켜 더 내릴 경우 현재 예금 8%, 대출 10%의 금리는 내년 중에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실질금리는 여전히 보장 될 것이고 뿐만 아니라 인플레기대심리의 진정에 따라 실세금리와의 괴리도 계속 좁혀지리라는 것이 정부의 기대다.
그러나 지금의 금리도 낮다는 것이 금융계의 지배적인 분위기인 마당에 이보다 더 낮춰나간다면 지금의 금융질서 왜곡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요컨대 정부와 실제금융시장에서 파악하고 있는 중요한 차이점은「실제 금리」의 수준을 어떻게 보느냐에서 비롯된다.
정부 당국자들의 판단으로는 그것이 은행금리보다 4∼5%정도 높은 14∼15%수준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기업이나 금융기관 쪽에서는 그보다도 3∼4% 더 높은 17∼18%선으로 여기고 있다. 더구나 최근의 실세금리가 다소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을 놓고 정부는 저금리 체제에 적용하고 있는 결과라고 낙관하고 있는 반면, 금융시장 쪽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만약 금융시장 쪽의 판단이 옳다면 앞으로의 금리인하 방향은 실세 금리화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게 될 것이다. 더구나 통화 쪽에서는 돈줄을 죌 계획이니까 최근의 통화 증발에 따른 시장금리의 하락현상이 내년에는 그 반대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든 금리든 모두 값이다. 그 값을 시장기능에 완전히 방치해서도 곤란하겠지만 무리하게 눌러 삐져 나와서도 난처한 일이다.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보다는 기대 심리를 진정시키는 정도의 선언적인 정책의지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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