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시장 활황이지만 ‘천수답’ 구조 명심해야

조인스랜드

입력

[황정일기자] “지금까지 쓰러지는 업체들이요? 모두 주택사업을 많이 하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주택업체들은 대체로 끝이 안 좋다고 해요. 천수답 형태의
사업 구도만 벗어나면 주택은 참 매력 있는 사업인데….”

불과 2년 전 한 대형 건설업체 임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는 주택시장이 위축돼 아파트가 안 팔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끝이 뻔히 보이는 주택사업에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천수답(天水畓).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을 말한다. 요즘의 첨단 산업 환경에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적어도 주택건설업은 아직도 천수답
구조를 띤다. 하늘(정부·금융권)에서 비(규제 완화, 자금 지원)가 내리면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다.

대형·중견 모두 주택사업 확대

2007년부터 줄곧 가뭄이 들면서 최근까지도 중견 주택건설업체 40여 곳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문을 닫았다. 부동산 규제가 시작되고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생긴 일이다. 경기가 나빠 집은 안 팔리고 은행에서 돈줄을 죄니 쓰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8년 외환위기 때가 그랬다. 정부 규제가 시작되고 자금줄이 마르면서 활발이 주택사업을 벌이던 업체들이 쓰러져갔다.

하지만 요즘은 또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이후 줄곧 신규 분양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주택사업 비중을 줄였던 업체들이 다시 비중을 늘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늘(정부)에서 비(규제 완화)가 내리면서 오랜만에 ‘장’이 선 덕분이다.

올해 분양된 주택은 지난 9일까지 23만7697가구다. 이는 지난해(18만5968가구)보다 27.8% 증가한 것으로,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물량이다. 내년엔 더 늘 것 같다. 대형·중견 할 것 없이 주택 사업 확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2만7529가구를 공급한 대우건설은 내년엔 3만가구 정도를 내놓을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5년간 매년 2만가구 이상 공급했다.
올해 1만2800여 가구를 선보인 대림산업은 내년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2만8128가구를 목표로 잡았다.

이 회사는 내년 12월 자체 사업으로 경기 용인시 남사지구 한 곳에서만 6800가구를 쏟아낸다. 올해 1만506가구에 그쳤던 현대건설도
내년 두 배에 가까운 2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롯데건설도 올해(7474가구)보다 55%(4116가구) 늘어난 1만1500여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외환·금융위기 기억해야

중견업체도 비슷하다. 우미건설은 내년 동탄2신도시, 용인 역북지구, 청주 호미지구 등지에서 8588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는 올해
4354가구보다 2배가량 늘는 수치다. 최근 몇 년간 제자리 걸음을 했던 도심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분양 물량이 더 늘 수도
있다.

전망도 나쁘지 않다. 전문가들은 “분양시장을 제외하고는 주택 경기가 썩 좋진 않지만 분양시장은 내년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내년
상반기 청약 제도가 완화되면 분양시장에 신규 수요가 확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때를 기억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기존 주택시장이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분양시장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외환·금융위기 때처럼 외부 요인에 의해 충격이 전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이면서 공공공사 물량이
감소해 체질도 약해진 상황이다. 대형 업체들이야 해외사업이 있지만 중견업체들은 분양시장이 위축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 대학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줄줄이 쓰러진 업체들은 외환위기를 경험하고도 주택사업에만 치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주택사업은 정부 정책에 쉽게 휘둘리는 천수답 구조이므로 사업다각화 등의 위험요소를 분산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