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노, "김의 도전 받아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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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프로복싱은 이제 종말을 고하는가.
약물중독, 가짜 태국복서사건, 세계도전8연패에다 김득구의 죽음까지 당한 프로복싱이 이번에는 유일한 세계챔피언 김철호마저 맥없이 드러눕고 말았다.
한국의 유일한 프로복싱 WBC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인 김철호(21)가 「라파엘·오로노」(24·베네쉘라)에게 6회38초만에 KO패, WBC슈퍼플라이급타이틀을 마의 6차 방어전에서 내주고 만 것이다. (28일·장충체)
김철호는 「오로노」에게 처음부터 샌드백처럼 얻어맞더니 5회 초반 「오로노」의 라이트스트레이트를 얼굴에 맞고 등을 들려 로프를 붙들어 첫 다운을 당했다.(이 상황은 지난해 8월 김태식이 멕시코의「아벨라르」에게 당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어 김은 무차별 가격을 받고 또 다운되는 등 5회에만 두 번 다운, 두 번 슬립다운으로 기진맥진된 뒤 1분의 휴식시간에 회복을 못하고 6회들어 또다시 난타당하자 주심「오르테가」씨가 경기를 중단시켰다.
「오로노」는 지난해1월 홈 링에서 가진 4차방어전에서 9회 KO패로 타이를을 잃었다가 이번에는 적지에서 KO로 타이틀을 찾는 기연을 남겼다.
김철호는 22개월만에 왕좌에서 물러났다.
역대 챔피언중 가장 성실하다는 평을 들어온 김철호의 결정적 패인은 스피드, 테크닉에서 「오로노」에게 역부족했다는 것보다 한국 챔피언들의 고질적인 트래이너와의 잡음이 재발하고 정신적인 나태때문으로 집약할 수 있다.
김은 지난해 1월 베네쉘라에서「오로노」를 9회 KO로 누르고 타이틀을 따낼때는 김진길트레이너와 콤비를 이뤘으나 1차방어전에선 김씨외에 서강일·홍수환씨등 3명이 공동 트레이너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홍수환-진충수-김준호-김진길씨 등 방어전때마다 트레이너가 교체됨으로써 맷집과 투지로 버티어온 김철호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오로노」가 「레니포」트레이너와 아마때부터 8년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콤비를 이룬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또 김철호는 보름전부터 왼쪽다리 허벅지에 근육통을 일으켜 타이틀매치 전날까지 침을 맞으며 컨디션을 조절하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다 김득구의 죽음까지 겹쳤는 데도 매니저측은 대전을 연기시키지 않고 그대로 강행, 공이 울리기 직전까지 승리를 장담하는 난센스를 빚었다.
「오로노」측이 22개월동안 절치부심해온 것과는 달리 김측은 방심으로 너무나 대비가 소홀했었다.
「오로노」는 『「레니포」트레이너의 지시대로 초반에 복부공격을 한 것이 주요했다. 3회부터 김의 가드가 내려가 적극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철호는 『역부족이다』라고 한마디외엔 묵묵부답이었다. 「오로노」는 WBC의 지시대로 김철호가 무승부로 간신히 5차방어전을 지킨「라울·발데스」(멕시코·동급1위)와 1차 방어전을 가진 뒤 김이 도전하면 언제 어디서나 받아주겠다고 확언했다. <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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