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법규 많아 어기고 살 수 밖에 없다" 김동일교수<이대> 천여명대상 의식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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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사람 세 사람 중 한사람은 『법대로만 하다가는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법이 실정에 맞지 않아 법을 어기고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현대사회연구소(소장고영복)가 26일 열리는 「한국인의 의식과 국가발전」이라는 학술대회에서 김동일교수(이대)가 발표할 『국민의식의 변화연구』에서 밝혀졌다.
교수는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지난10월 전국에서 무작위 추출한 주민 1천1백98명을 대상으로 국민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80%가 『경제발전에 다소 지장이 있어도 민주주의는 꼭 실천돼야 한다』고 응답, 지난해의 77%에 비해 민주주의의 실천을 강조하는 응답자가 늘어났다.
특히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난해(68%)보다는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55.3%나 되며, 『국민이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으면 나라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2.1%(지난해41%)로 매우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나 같은 사람은 정치에 대해 어떻게 해봤자 아무소용이 없다』고 응답한 체념형의 사람도 63%(작년 73%)나 됐다.
이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라는 정치문화적 가치를 지난해보다 더욱 강하게 느끼면서도 실천규범을 잘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우리사회에서는 법대로만 하다가는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분의1에 가깝고 (31%) 절반가까이(47%)가 『우리나라 법은 실정에 안맞는 게 많다』고 생각, ▲법질서가 불안정하고 ▲법을 어기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의 부도덕함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주 무례한 사람과 다툴 때는 주먹을 쓸 수도 있다』가 지난해(55%) 보다는 줄었으나 아직도 절반에 가깝고(47.7%) 『억울할 때 법에 호소하면 쉽게 해결된다』는 지난해(43%) 보다 훨씬 떨어져 3분의1에도 못 미치는(30.1%)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늘고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는 생각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응답자의 ▲절반이상(54%)은 『세상일은 돈이나 권력있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고 ▲69%는 『우리나라에서는 연줄·배경이 있어야 출세한다』고 믿고 있으며 ▲절반정도(48%)가『우리사회는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43%가 『출세하는데 고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대우받고 성공한다는 사회정의가 확립되지 않은 아노미(무규범성)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신문에 나는 사실은 대체로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정도(51.6%)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지난해(55%)보다 줄어들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TV방송이 교육적으로 유익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3분의1을 조금 넘어(37%) 역시 지난해(50%)보다 크게 떨어졌다.
언론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떨어지고 TV방송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회의감이 늘고 있음을 나타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크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 반면(58%·지난해 55%) 『부모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자식은 복종해야 한다』는 절반에 가까워 (47.7%) 지난해(55%) 보다는 다소 떨어졌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가치관으로 자식의 자주성·독립심을 내세우는 한편 아직도 가부장적 권위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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