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와 이청준」-김치수 평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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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사람의 비평가와 특정의 작가가 조화롭게 만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논쟁적인 주제를 놓고 상호 충돌하는 가운데에서 작가와 비평가는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평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작가와 비평가의 내밀한 대화이며, 그 대화를 통해 문학의 세계가 새롭게 의미 지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문학평론가 김치수씨가 엮어낸 평론집 「박경리와 이청준」은 당대문학의 첨예한 의식이 서로 만나는 각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삶의 내면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의 문제를 독특한 언어로 표출하고 있는 두 작가, 박경리와 이청준은 많은 논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단편적인 논의에 그쳤기 때문에 이들 두 작가의 문학에 대한 체계화된 이해를 가능하게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평론집「박경리와 이청준」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일단 극복하고 있는 책임 있는 논리가 바탕을 이룬다.
30년에 가까운 창작생활을 지속해온 작가 박경리의 문학을 소설「토지」의 문제로 귀결시켜 보고자 하는 네 편의 소설론은 박경리의 문학이 보여주고 있는 폭과 깊이를 감당 할 수 있는 치밀한 분석과 논리적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을 위해 씌어진 다섯 편의 평론 또한 동시대 동년배의 작가와 비평가가 이상적인 형태로 악수하고 있는 글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같은 시대에 비슷한 상황 속에서 문학을 살아가는 비평가가 자기시대의 작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언어적 보상이「박경리와 이청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대의 평가를 이와 같은 체계화된 논리로 수행할 수 있는 비평가 김치수씨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평가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 두 작가의 문학세계가 모두 우리문학의 수준과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민음두간 2백33페이지 3천원>

<권영민>(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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