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리빙] '열흘간 TV 끄기' 실험 외국의 사례를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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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집안에서 TV를 끄면 무슨 일이 생길까. "가족간 대화가 시작됐다"는 말에는 국경이 없었다.

이는 EBS가 특집 다큐멘터리 'TV와 인간이 헤어질 때'(31일 방송 예정) 제작을 위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5개국의 50가구를 대상으로 '열흘간 TV 끄기'실험을 한 결과다. EBS는 지난해 11~12월 서울.경기지역 131가구를 대상으로 '20일 동안 TV 끄기'실험을 진행해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영국의 줄리 스티븐슨(48) 가족은 그동안 거실에서 TV를 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중 화제도 대부분 TV에 대한 것이었다. 채널 선택권을 두고 언쟁도 잦았다. 하지만 실험을 시작한 뒤 평소보다 긴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식사시간을 즐기게 됐다. 스티븐슨은 "아들(17).딸(15)이 평소엔 TV에 집중하느라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열흘 동안 TV 안 보기에 익숙해지면서 이런 태도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고 말했다.

7세, 4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프랑스의 니콜라 조르주(36) 가족은 실험 초반엔 TV 없는 집안이 너무 조용해 이상하게 느껴졌다. 조르주는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며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다 보니 가족끼리 화목해지고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와다 미호(31)도 "집안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두 살배기 아들을 TV 앞에 앉혀놓은 일이 많았다"며 "실험을 시작한 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는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거나 스스로 놀이를 찾아서 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TV를 손쉬운 여가 활용 도구로 여겼던 노인들도 실험 결과에 만족스러워 했다. 77세 동갑내기인 독일의 빌란트 부부는 저녁 식사 뒤 습관처럼 보던 TV를 끈 뒤 밀린 일을 할 시간을 얻었다. 부부가 함께 여행 준비를 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연출을 맡은 이정욱 PD는 "실험에 참가한 가족들이 처음에는 TV 없이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지만, 금세 새로운 일상의 재미를 하나둘 찾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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