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 지켜 중매결혼 고집|경북 안동군 북후면 도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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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림의 본 고장인 경북 일대는 이름난 벌족이 많다. 그중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쳐 온 명문 벌족이 안동 권씨다.
안동에서 영주 쪽으로 30리 길, 안동 권씨의 5백년 집성촌「북후면 도촌동」이 천 등산 치맛자락에 감 싸였다.
관향인 안동에서 이 마을로 처음 이주한 인물은 권사빈(1430년께). 그는 시조 권행의 19세손이다. 사빈은 이곳에서 황무지를 개척, 농토를 일구고 8명의 아들을 두어 가문의 번성을 가져왔다. 마을 전체 1백70여가구 중 90여 가구 5백여 명이 그의 후손들이다.
이 마을의 명물은「동수 호수」라 불리는 5백년 연륜의 느티나무.
『사빈 어른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동서남북 4곳에 동수호수를 심었는기라. 이 나무들이 마을을 지켜 줬기 때문에 자손이 끊기지 않고 번성했다 아이가.』사빈의 15세손 권용섭씨(61)는 이 마을「권문」번성의 배경을 이렇게 풀이한다.
사빈의 후손들은 천 등산 기슭에서 금풍영월로 살았다. 권세나 부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청빈한 학자들로 주류를 이뤘다는 것.
때문에 과거 인물 중에는 권력의 정상에서 국정을 흔들었던 세도가도, 만석꾼도 없었단다.
권재호(장원광업소장), 권오희(동광운수 사장), 권태인(경일고 이사장), 권오규(경북대 교수), 권기덕(효성여대 교수), 권영건(상지대 교수), 권영수씨 등 이 이 마을이 배출한 인물들.
연애 결혼이 일반화 된지 이미 오래지만 도촌동 권씨들은 아직도 명문가와의 중매결혼을 고집한다.
예부 터 안동 권씨들은 당대의 이름난 학자집안과 즐겨 통혼을 했으며 이같은 전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 유명한 목서 이장은 권중달(고려조의 인물)의 사위요, 서거정은 권근의 외손이다. 또 이장의 3째 아들 이종선은 권근의 사위요, 오성대감으로 이름난 이항복은 권율 장군의 사위였다. 퇴계 이황 또한 권질의 사위.
이렇듯 안동 권씨들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 동일한 신분계층끼리 통혼 권을 형성함으로써 하나의 권력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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