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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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 세상 으뜸의 책이라면 그건 성서일 것이나 그밖에도 고귀한 정신들의 심오한 묵상록들이 무수히 있어져오면서 수원지의 물과도 같이 만인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을 먹여주고 있다. 삶의 복됨을 이점에서도 절감치 않을 수 없다.
나에겐 일찌기 「타고르」시집과의 연분이 있어 온다. 1944년 2차대전의 막바지에 일본땅 소도시에서 여고의 졸업반이었으면서 폐결핵의 암담한 진단을 받아 장기결석으로 누워지내었다. 이때 이 한권의 책은 가히 회생의 영약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성싶다.
일본어로 번역된 작은 책이어서 원작을 어느 만큼 옮겨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고 또한 그의 전 작품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방울방울의 생수로서 나의 영육을 적시기에 족했었다.
동양적인 명상의 장엄함이 울창한 숲의 나무들처럼 늘어선 그 땅에선 불어 가는 바람조차 신령한 음악이던 것이다. 물론 나의 심성은 어리고 좁아서 그의 완숙한 세계를 이해하기엔 어림없는 노릇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나의 몸속에 피를 보태어 주고 나의 마음에 광활한 큰 땅의 한없는 안식을 주었었다. 햇별 쨍쨍한 꽃밭 같은게 아니라 넓이를 알수 없는 초원의 해으스름 같은 편안함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삶의 외경을, 그리고 영성의 꼴이 없는 물 흐름 같은 걸 일러주어 내 오성 첫눈 뜸의 계기가 되어졌었다. 한낱의 묘목으로 그의 큰 땅의 가장자리에서 단맛의 이슬을 나누어 받았던 바, 은혜로운 한 연분으로 손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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