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4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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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요즈음 잘되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그래도 생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서문경이 금련을 위로하는 말을 흘리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곱고 묘려한 얼굴인데도 무능한 남편 밑에서 고생하고 있는 여자의 그늘이 느껴지는 듯했다.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죠."

아닌 게 아니라 금련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왕노파가 슬쩍 끼어들었다.

"큰따님과 혼담이 오고가는 그 댁 아들이 진경제라고요? 장사를 하고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그 경제(經濟)인가요?"

서문경은 긍정의 표시로 고개만 한번 끄덕여 보였다. 사위가 될 사내의 이름이 경제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위를 얻으면 비록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했어도 장사는 잘할 것 같네요. 그 댁에서 준비하는 예물도 대단하겠지만 어르신 쪽에서 준비하는 예물도 어마어마하겠네요. 소문에 들으니, 어르신 집안 금고에 들어있는 돈을 하늘 높이 쌓으면 북두칠성에까지 닿는다고 하던데요."

왕노파는 금련이 들으라고 일부러 들뜬 어조로 뇌까렸다.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다녀요? 이 세상 어떤 부자도 북두칠성까지는 돈을 쌓지 못할 거요. 아마도 북두칠성이 재물의 신과 관련이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도는 모양이군. 북두 할 때 두(斗)는 쌀이나 곡물을 되는 되 두와 같은 글자잖아요."

서문경의 설명을 들으며 금련이 맑은 두 눈을 깜빡였다.

"금화와 은화를 되는 되도 두(斗)가 되겠지요. 누가 우리 집에 은화라도 한 되 되어주고 가면 고생 끝일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해주리다' 하는 말이 서문경의 가슴 가득히 울렸다. 왕노파가 또 서문경의 부를 과시해주는 말을 덧보탰다.

"어르신 집에는 각종 보석은 말할 것도 없고, 물소뿔도 있고 상아도 있다면서요? 게다가 현청 관리들 치고 어르신에게서 돈을 빌려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데요."

사실은 현청의 관리들 치고 서문경의 뇌물을 받아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었다. 서문경은 왕노파가 왜 일을 서두르지 않고 엉뚱한 말들만 늘어놓고 있는가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차를 마시러 온 손님에게 차도 내오지 않았네. 하도 반가운 마음에 그만. 부인도 한 잔 더 하고 나도 한 잔 더 하지."

왕노파가 황급히 차를 끓이러 방을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금련은 어색한 나머지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몰라 더욱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다시 바느질감을 손에 들었다.

"차를 마시려면 바느질은 나중에 하도록 하세요. 옷감 보풀도 날리니까."

서문경이 넌지시 금련 쪽으로 손을 뻗으며 바느질감을 가져오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 순간, 서문경의 손가락 끝에 금련의 허벅지 바깥 부분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 네. 알았어요."

금련이 당황하며 얼른 바느질감을 도로 내려놓으려다가 손등이 서문경의 손등에 살짝 부딪쳤다. 그 바람에 바늘과 옷감이 한꺼번에 우르르 방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그때 두 사람이 동시에 그것들을 손으로 받으려고 허리를 구부렸는데, 그만 상체가 서로 닿을 정도가 되었다. 서문경은 금련의 몸에서 풍기는 야릇한 향기에 순간적으로 취해 바느질감처럼 널부러질 것만 같았다. 서문경이 속으로 탄식을 발하였다.

'아, 정말 미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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