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좌파정권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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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 5월 프랑스 사회당정권의 탄생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한 서구의 정치지도가 스페인 총 선거에도 작용하여 「펠리페·곤살레스」의 사회노동당이 좌파세력으로는 43년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
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 스페인이 민주정치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줄곧 중도우파가 집권을 해왔다. 그 사이에 스페인도 예외없이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 빠져 들어가 인플레 15, 실업율 16%라는 어려운 경제사정을 안고 있었다.
스페인의 경제사정으로 「변화」를 역설하는 「곤살레스」의 선거구호는 마력에 가까운 호소력을 가졌다.
40세에 동안을 한 「곤살레스」의 참신한 인상부터가 「프랑코」의 장기독재에 시달린 스페인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것」의 상징으로 비쳤을 것이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지난 5월의 지방의회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이번 총선거를 통한 집권은 확실해졌었다.
다만 이 나라 정치에 아직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가 좌파의 집권을 예방하는, 또는 좌파정권을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누구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곤살레스」의 집권가도에 검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곤살레스」는 사회노동당의 노선을 온건쪽으로 수정함으로써 국민들에게는 정권 담당능력을 과시하고 군부쪽에는 경계를 풀도록 하는데 일단 성공한 것 같다.
스페인 좌파정권의 탄생으로 이 나라의 구공시(EC) 가입문제는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가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그러나「곤살레스」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에는 현실주의가 충분히 가미되고 있고. 4개의 스페인 군사기지를 쓰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유대관계의 현상유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좌파정권의 탄생이 바로 반나토, 반미를 의미한다고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작년 10월 좌파로서는 처음으로 집권한 그리스의 경우가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 「안드래아스·파판드레우」수상의 사회주의당은 나토와 구공시 탈퇴, 4개의 미군기지철수를 공약하고 총선거에서 이겼다. 그러나 집권후의 「파판드레우」정부는 이 세 가지 문제에서 강경 노선을 후퇴시켜 현실주의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곤살레스」의 선거승리는 스페인에 거의 반세기만에 민주정치가 부활하고 정착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서구지역 전체의 정변을 보면 스페인 좌파정권의 앞날이 그렇게 순탄한 것은 아니다.
작년 5월 이후 서구의 11개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었다. 그 중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웨덴, 스페인은 중도우파에서 좌파로, 서독,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는 좌에서 우로 정권이 교체되고 네델란드가 중도의 제자리에서 사람만 바뀌었다.
이것을 다시 지역적으로 보면 지중해안의 남구에서는 좌경화 바람, 스웨덴을 예외로 하는 발틱연안의 북구에서는 우경화 바람이 불었다. 스페인도 남구의 좌경화 바람을 탔다고 볼 수가 있다.
정권이 바뀐 공통의 요인은 경제다. 구공시 10개 나라의 실업자수는 l천만명을 넘어 섰다.좌파정권들은 재정적자를 줄이자고 복지비를 삭감하려다가 정권을 잃었다.
스페인의 실업율 16%는 유럽 최고, 이탈리아의 지하경제는 GNP의 30%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렇게 보면 스페인의 「곤살레스」정권을 포함하여 좌파든 우파든 유럽의 새 정권들이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할 유효한 수단을 갖지 않는 한 정변의 원인들은 그대로 남아 새 정권들의 안정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미테랑」정부의「경제실험의 실패」가 그런 예의 하나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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