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 식품의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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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규격과 정량에 맞는 상품을 제조, 공급하는 것은 소비 사회에서 생산자가 성실히 지켜야할 사회 윤리의 하나다.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이 복잡해진 요즘은 특히 이것이 법적 의무로까지 확대되며 이 의무의 유수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는 신용 사회를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이 일천한 우리 현실에선 이 의무가 종종 무시되고 규격과 정량에 미달한 상품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일정한 용기에 담아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프로판 가스는 자주 무게가 부축하고 석유조차 분량을 속인다. 쇠고기 l인분은 도대체 무게가 몇 그램인지 기준이 없다.
심지어는 신용과 가치의 척도가 되는 금조차 순도를 속이고 부정 계량기는 도처에서 소비자의 눈을 현혹시킨다.
작년 한 조사에서는 포장 상품의 30%가 표시된 중량에 미달했다. 이것은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소비자의 항의가 자주 있었기에 망정이지 79년의 조사에선 전체 포장 상품의 50·6%가 표시량 미달 상품이었다.
포장 상품은 성격상 정량 미달 여부가 얼른 식별이 안되고 또 구매 관행상 일일이 저울에 달아보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생산자나 상인은 이점을 악용해 정량 미달 상품을 서슴없이 제조 공급한다.
특히 식품의 함량 부족은 전문 검사 시설을 갖춘 곳에서나 그 진상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이 각별히 유념해야될 상품이다. 흔히들 외국에서 과일 주스를 마셔본 사람은 국산 주스가 어딘지 모르게 심심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국산 식품의 제조 기술이 부족하다기보다 주스에 용해된 천연 과즙의 분량이 적기 때문이다.
어묵도 마찬가지다. 생선이 많이 들어가야 할 어묵에 밀가루 반죽이 대부분이고 보면 그것을 「어」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기호가 델리키트 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추세다. 또 규격과 정량에 맞는 충분한 함량의 식품을 제값에 사먹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최근에 문제가 된 천연 과일 주스는 천연 과즙이 95% 이상 들어가야 하는데도 보사부 분석으로는 대부분 50% 밖에 안들어갔다. 그러고도 선전은 천연 과즙의 맛을 낸다고 한다. 일종의 소비자 기만 행위다
당국이 이번에 13년만에 가공 식품의 규격 기준을 대폭 손질해 과채류 음료의 품질 기준을 정한 것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매우 타당한 처사다.
앞으로 이 기준을 중심으로 분량이나 함량이 제대로 만들어진 식품을 공급하도록 생산자는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아울러 이것이 식품에 그치지 않고 공산품 건반에 걸쳐 규격과 정량에 맞는 제품이 생산되도록 품질 관리와 검사에 힘쓰는 것이 왜곡된 신용 사회를 바로 잡는데 중요한 일이다.
연탄의 품질 파동을 상기해 보자. 당국은 하루에 한번만 갈아도 되는 연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공직자와 생산 업자가 큰 홍역을 치른 뒤에 나온 정부의 약속이니까 주부들은 그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연탄이 대량 보급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그릇된 품질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은 사실상 소비자 혼자의 힘만으론 부족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배려가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 믿고 사는 밝은 사회가 이룩될 것이며 이런 사회는 국민의 사기를 한층 높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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