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모르는 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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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러나 저금리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실질금리론은 아직도 기세등등 하다. 현재의 8% 금리로도 플러스의 실질금리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을 뿐아니라 이 마당에 금리를 올릴 경우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해 가까스로 이룩한 물가안정을 깨뜨린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무지 금융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돈의 값이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초연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전주는 연20% 금리는 되어야 돈을 빌려주겠다는 생각이고 도이 필요한 쪽도 그 정도의 이자도 좋으니 빌어쓰는 편이 이롭다고 판단하고 있는 마당인뎨 유독 당국만이 『지금 물가가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뎨 무슨 말이냐』는 식이다.
현실을 모르는 이론경제의 병폐다. 오히려 저금리 때문에 자금수요가 늘어나고 이것이 물가불안으로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무관심이다.
금리자체만 하더라도 기업들이 현재의 금리수준이 적당치 않다고 여기는 이유를 우선 따져봐야한다.
회사채의 경우에서 보듯이 발행금리는 12·5%인데 실세를 반영하는 장외덤핑금리는 17∼18%선에 가있고 이것저것 비용이 드는 것을 합치면 20%정도의 이자부담을 하고있다는 것이 해당업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어쨌든 저금리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고있다.
더우기 적자재정을 표방하고 나선 정부까지 금융시장에 뛰어들 경우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금년말까지 3천5백억원, 내년중에 최소한 1조원 이상의 돈을 정부가 끌어쓸 예정이다. 일반은행들이 l년에 끌어모으는 신규예금 2조5천억원규모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어쩌면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이같은 엄청난 규모의 국공채가 원만히 소화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스스로도 지금의 비현실적인 금리를 하루빨리올렸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실질금리론을 내세우고있는 정부로선 물가가 계속 내려가고 있는 판에 금리를 올릴 명분이 없다.
금리에 관한한 정부의 입장은 닭의 갈비뼈를 들고 있는 심경,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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