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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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제(10일)는 쌍십절. 무창혁명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한지 71년이 된다. 1911년 10월10일 무창의 혁명군이 봉기, 삽시간에 무한삼진을 점령하고 이듬해 1월에 남경에서 손문이 임시대총통에 취임했다.
이로써 청조는 사라지고 중화민국은 내홍과 피침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드라마를 연출, 오늘에 이르렀다. 1911년의 간지인 신해를 따라 이 건국혁명을 신해혁명이라 이른다.
1925년 손문이 북경에서 객사하며 남긴 유명한 말,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혁명상미완)』는 말은 그대로 오늘의 현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금의 자유중국은 정치적·외교적 고립 속에서도 눈부시게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도국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우선 1인당 GNP가 우리의 l천6백36달러(81년 기준)보다 훨씬 높은 2천5백70달러다. 수출은 2백26억 달러로 우리보다 약간 많고 거기다 수출입이 균형을 이루어 14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물가도 매우 안정되어서 75년을 1백으로 볼 때 한국은 2백73·6, 대만은 1백72를 나타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국내저축률이 한국이 19·3%인데 비해 대만은 30·9%. 근면 저축하는 중국인특유의 미덕을 보는 것 같다.
자유중국이 본토를 잃은 채 대만에 칩거한 이래 가장 큰 타격은 79년의 미-대만 관계 단절이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도 유다른 반미감정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한때「카터」행정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았을 뿐이다.
대만은 지금 두 번째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다. 바로 중공의 통일공세다. 중공은 대만의 자치권은 물론, 자본주의 기조의 현 경제체제와 군대까지 유지하는 통일방안을 내세우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제2의 상해성명」으로 중공의 정통성을 다시 한번 인정해주었다.
과연 대만이 이 험난한 정세를 어떻게 헤쳐갈지 역사의 큰 주목거리다.
이미 대만의 광복대륙의 구호는 한계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자력갱생의 그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우선 그것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본토에서 넘어온 주민과 대만원주민과의 화해노력을 위해 원주민 출신의 임양항을 최근 내정부장에 등용했다.
또 물질적 번영에 뒤따른 사회범죄의 증가에 단호히 대처하는 길을 찾고 있다. 사회복지의 혜택을 고르게 확산시키기 위해 의료보험의 확대와 최저임금의 인상이 착실히 추진되고 있다.
비록 대륙은 잃었으나 그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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