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세계적 악기 제작자 진창현씨 삶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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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현악기 제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악기 제조법은 가문의 비밀에 속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명장의 자리를 독점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 현악기 제작가 경연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독학으로 악기를 만들어 온 한 남자가 6개 부문 중 5개를 휩쓴 것이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이어 이 남자는 미국 바이올린 제작자협회로부터 '무감사(無鑑査)제작가' 로 인정된다. 전 세계 5명에게만 주어진 영예였다. '매스터 메이커(Master Maker)'란 칭호도 받았다. 그의 이름은 진창현, 한국인이었다.

SBS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진창현(76)씨의 일대기를 그린 '천상의 바이올린'(사진)을 15일 오후 8시55분 방송한다. 다큐멘터리지만 극적인 삶을 살리기 위해 '형식 파괴'를 단행했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형식을 중간 중간 집어넣었다.

진씨는 재일 한국인 1세대다. 일제시대 때 징용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4살 때였다. 인력거를 끌고 막노동을 하며 공부의 꿈을 키웠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영어 교사의 꿈을 접었다. 현악기 제작자의 길로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그를 거부했다. 어떤 장인도 조선인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좌절에도 진씨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는 바뀌었다. 이제 일본이 그에게 열광한다. 그를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이탈리아의 장인)'라고까지 부른다. 그의 악기는 일본에서 최상품 대접을 받는다. 진씨의 삶은 TV 드라마와 만화로도 제작됐다. 제작진은 "스승 하나 없이 세계 최고의 장인이 된 진씨를 통해 용기와 열정의 힘을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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