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월하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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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월하미인' 이원규(1960~)

그믐께마다

밤 마실 나가더니

저 년,

애 밴 년

무서리 이부자리에

초경의 단풍잎만 지더니

차마 지아비도 밝힐 수 없는

저 년,

저 만삭의 보름달

당산나무 아래

우우우 피가 도는

돌벅수 하나



초승달이 점차 배가 불러 만월이 되기까지의 시간적 추이를 여인의 임신 과정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위 시편은 등줄기를 적시는 찬물처럼 서늘한 기운을 불어온다. 보름달 뜨면 늑대가 벼랑 위에서 운다. 그렇다면 달은 지아비 늑대의 씨를 밴 것인가. 아니면 당산나무 아래 피가 도는 돌벅수(장승)의 씨를 밴 것인가. 우리는 모두 우주의 사생아인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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