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바다로 나가 열강이 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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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위에서 조총을 겨누고 있는 왜병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직지사의 탱화에 등장하는 ‘해양세력’ 일본의 모습이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주강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540쪽, 1만8000원

지구 표면의 70% 이상이 바다다. 지구는 차라리 '수구(水球)'로 불러야 할 정도다. 인간은 배를 타고 옮겨 다니며 다른 뭍과 교류했다. 이게 쌓이고 쌓여 역사로 퇴적돼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육지 중심의 역사에 더 익숙하다. 한국사.일본사.중국사 등 일국사가 주류다. 민속.문화.생활사에 밝은 역사민속학자인 저자는 이에 반기를 든다. 최근 몇 년 해양문화사로 영역을 넓힌 그는 한반도사를 해양사의 관점에서 뒤집어본다. 해양사란 그냥 바다의 역사가 아니다. 바다라는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의 관계사다. 이렇게 보면 일국사에서 놓치기 쉬운 역사가 눈에 잘 들어온다.

저자는 독도 문제부터 해양사로 풀어간다. 이는 일제침략에서 비롯된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수백년에 걸친 일본의 해양영토 확장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이므로 장기적 시각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왜구들의 해묵은 도발'로 규정하기도 한다.

태평양전쟁도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해양세력 사이에 일어난 필연적 충돌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근대의 열강은 모두 해양세력들이었다. 자국의 배로 세계 어디에나 진출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다. 그들의 싸움에 끼여 한국인은 고달픈 삶을 강요당했다.

그럼 한반도는 왜 침략의 대상이 됐을까. 저자는 조선이 바다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바다를 변방으로만 봐넘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진취적 행동공간이 아니라 해양세력의 침략루트로 각인돼 버렸다.

의식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이는 다시 역사의 차이를 초래하는 법. 조선은 표류해온 외국인을 경계하고 구박했지만 일본은 극진히 대접하며 문물을 배웠다. 여기에서 벌어진 차이가 근대의 비극을 부른 셈이다. 축구에서 골 결정력이 있어야 하듯 역사에서도 중요한 순간에 흐름을 타는 결정력이 필요하다. 바다를 지배하는 힘이 역사의 결정력이었던 시절 조선은 넋을 놓고 있었다. 개방과 교류라는 바다의 코드를 먼저 읽어내면 팽창과 정복으로 나아가고, 그렇지 못하면 굴복과 종속의 신세가 되던 그 시절에 말이다.

어느 길로 갈지는 역시 사람이 정한다. 근대 일본엔 결정력을 지닌 선수가 득실거렸다.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 오쿠보 도시미치,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 가이슈, 사카모토 료마, 구사카 겐즈이…. 조선정벌을 주장하던 메이지유신의 주역, 근대화에 목숨 바친 계몽 사무라이, 대외침략을 착착 준비하던 군국주의 세력들이다.

이들 중 우리는 몇이나 알고 있을까.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 정도 아닐까. 우리에겐 모두 비판과 증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비판도 뭘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또 제대로 비판해야 배울 것도 얻는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우리의 무지를 강타한다. '공부 좀 하라'며. 저자는 4~5년에 걸쳐 한.일 근현대사의 현장을 구석구석 답사했다. 그 현장감이 배어있는 서술이 박력있다. 비주얼 자료들도 썩 훌륭하다. 일본 근대화 리더들의 한자 이름에 몇 군데 오자가 있는 게 옥의 티.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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