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In&Out 맛] 태양이 빚은 장미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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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앞에는 라벤더와 로즈메리가 자란다. 야생 허브다. 짙은 향기 너머로 신선한 피를 상징하는 진홍빛 파피 꽃과 불멸을 뜻하는 노란색 임모텔 꽃이 대지에 악센트를 준다. 이곳은 자연조차도 감각적이다.

프랑스 남부 코트 뒤 론. 알프스 빙하에서 발원, 지중해를 향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론 강의 양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고개를 드니 햇빛이 너무도 눈부시다. 오로지 태양과 대지뿐. 그 사이에는 거칠 것이 전혀 없다. 포도는 마구 익어간다.

프랑스 포도주의 숨은 보석, 코트 뒤 론 포도주가 생산되는 곳은 이렇게 맑고 산뜻하다. 이 지역 포도주는 주로 수출용으로 생산된 보르도와 달리 내수 중심이다. 그래서 프랑스 안에서만큼 해외에선 명성을 누리지 못해왔다. 알려진 게 샤토뇌프 뒤파프(Chateauneuf du Pape) 정도다. 하지만 한걸음 다가가 본 이곳에는 개성 있는 포도주 광맥이 넘친다.

재배되는 포도는 그르나슈 루즈(grenache rouge)와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그리고 쉬라(shiraz)가 주종을 이룬다. 산뜻하면서 듬직한 맛의 포도주를 만드는 종들이다. 붉은 포도주는 그르나슈 루즈를, 흰포도주는 그르나슈 블랑을 기본으로 다른 포도를 발효한 원액을 블랜딩해서 만든다. 드라이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미끈하지도 않은 조화로운 맛이다.

이 포도들이 빚어내는 교향악을 들어보자. 우선 만날 수 있는 것이 장미의 눈물이다. 타벨 로제(Tabel Ros?).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로제 포도주의 대명사로 통한다. 로제는 장밋빛이라는 뜻이다.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기에 그저 그만이다. 불빛에 아른거리는 깊은 장미 빛깔과 산뜻한 맛, 오묘한 향. 여름에 지친 우리의 코끝을 살아있는 기쁨으로 넘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곳 로제 포도주는은 그르나슈 흰 포도주에 붉은 포도주를 타서 특유의 빛깔과 향, 그리고 맛을 새로 창조한다. 장미의 오묘함에 도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흰 포도주의 상큼하고 맑은 맛이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 달콤한 봄드브니즈(Beaumes-de-Venise) 흰 포도주다. 단맛이 나는 디저트 포도주의 최고봉이 여기서 나온다. 특히 뮈스카(muscat)는 디저트 주로는 물론 얼음을 타 마실 경우 식전 주로도 이용할 수 있다. 매혹적인 향기가 사람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생명의 물'이다. 이 밖에도 케란(Cairanne)지역의 '코린 쿠튀리에(Corinne Couturier)'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성있는 포도주로 야성적인 맛을 자랑한다. 12세기 성채 주변 포도원에서 나오는 샤토 드부사르귀(Chateau de Boussargues)는 프랑스 혁명 전부터 이어온 전통 포도주의 맛을 오늘에도 재현한다.

도멘 뒤파크 생샤를(Domaine du Parc Saint Charles) 포도원은 주변에서 나는 벌꿀과 더불어 아로마향이 아련하고 깊은 맛이 좋은 포도주가 난다. 코트 뒤 론 포도주의 숨은 광맥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비뇽(프랑스)=채인택 기자

로제 포도주와 어울리는 건강 음식, 가스파초

스페인이 본산이지만 남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인기 있는 건강 수프다. 액체 샐러드로 통한다. 토마토.피망.오이.양파.마늘을 믹서로 간 뒤 올리브 기름과 식초를 넣고 빵가루를 섞어 걸쭉하게 만든다. 파슬리 가루를 뿌려 마무리하며 입맛에 따라 달걀이나 과일, 건과류 등을 올려도 좋다. 가스파초는 '물에 적신 빵'이란 뜻의 아랍어인 만큼 수프용 빵을 곁들여 먹는다.

환상의 궁합, 치즈와 코트 뒤 론 포도주

프랑스 치즈부문 최고 기능장 조지안 카네스테우(사진)에게서 프랑스 유명 치즈와 코트 뒤 론 포도주와의 조화에 대해 들어봤다.

■카망베르 : 부드럽고 입에 잘 녹는 데다 향도 맛도 무난하다(한국인의 입맛에도 가장 잘 맞는 치즈로 통한다). 하지만 무난하다고 모든 포도주와 다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다. 타닌이 많은 드라이한 맛의 포도주와도 묘하게 궁합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반대 선상에 있는 미끈한 맛의 것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산뜻한 느낌의 코트 뒤 론 포도주와는 잘 맞는다. 중세 마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세귀레에서 나는 라 피올 뒤 슈발레에 델벤(La Fiole du Chevalier d'Elbene)과 가장 잘 조화를 이룬다.

■로크포르 블루 치즈 : 블루 치즈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로크포르는 이미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하고 진한 맛으로 궁합에 맞는 포도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한 것으로는 포도주의 맛을 버리는 것은 물론 로크포르에서 미처 몰랐던 강한 누린내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해답은 코트 뒤 론에서 나는 단맛의 흰 포도주다. 도멘 브레시 마송(Domaine Bressy Masson)은 로크포르의 맛을 더욱 안정적이고 진하게 한다. 블루 치즈 팬들에겐 즐거운 조합이다.

■오베르뉴 : 짙은 맛의 치즈로 산뜻한 흰 포도주가 어울린다. 콩드류(Condrieu)를 추천한다.

■뮌스터 : 짙은 맛이 나는 이 치즈는 중후한 도멘 상타 뒤크(Domaine Santa Duc)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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