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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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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보스턴의 행정관 에드워드 G 레플러가 일을 벌인 건 1924년 3월 21일이었다.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5만 달러를 들여 회사를 차렸다. 이게 세계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매사추세츠 인베스터 트러스트다. 당시 레플러로서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상상도 못했을 터였다. 80년 뒤인 2004년 미국. 8300만 명의 투자자가 1만여 개의 뮤추얼펀드에 7조 달러의 돈을 굴리고 있다. 레플러는 미국인의 재테크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 뮤추얼펀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비교적 최근이다. 98년 5월,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방에 불려갔다 나온 당시 증권감독원 K모 국장은 머리를 질끈 싸매야 했다. 위원장에게 건네받은 쪽지 한 장이 화근이었다. 'Natural Fund'. 쪽지엔 달랑 이렇게 씌어 있었다. 잘 검토하란 지시에 무조건 "예, 알았습니다"하고 방을 나온 게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전 직원이 동원돼 온갖 자료를 뒤졌지만 도통 알 수 없었다. 며칠 후 위원장의 쪽지가 'Mutual Fund'를 흘려 쓴 것임을 알았지만 이미 K국장의 머리는 하얗게 센 뒤였다.

그해 12월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펀드 1호가 세상에 나왔다. 세 시간 만에 500억원어치가 다 팔렸다. 6년여가 지난 2005년 8월, 국내 펀드 시장은 200조 시대를 맞고 있다. 덕분에 주가도 오르고 선진국형 간접투자 시대가 열린 건 좋은데, 워낙 펀드가 많이 생기다 보니 이젠 뭘 고르느냐가 고민거리가 됐다.

하버드 대학의 동창기금은 260억 달러나 된다. 이걸 10년간 굴려 연평균 15.9%의 수익을 올린 잭 마이어는 투자의 귀재로 불린다. 그가 꼽은 최고의 투자 비결은 "수수료가 싼 펀드를 골라라"였다.

펀드 붐이 일었던 80년대 미국 펀드들의 수수료는 꽤 비쌌다. 오죽했으면 수리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은 "고객은 아랑곳 않고 수수료만 챙기는 펀드 매니저들은 모두 사라져라"고 꾸짖었을까. 국내의 펀드 수수료는 미국의 약 두 배다. 지난 2년간 국내 은행.증권사들이 수수료로 거둔 돈은 4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자칫 새뮤얼슨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우리 은행.증권사들이 크게 혼쭐이라도 날까 걱정이다.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