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연남발이 관객 멀리한다-연극계에 바란다…김방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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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더웠던 여름이 물러가면서 연극계도 서서히 활기를 띠고 있다. 대한민국 연극제도 상당수준의 작품들을 공연하고 있고, 최근에는1천5백석짜리 극장이 연일 입석으로 메워질 만큼 관객이 든 공연들도 있었다.,
들이켜보건대 지난 여름은 연극공연 자체보다 연극에 관한 논의가 더 분분했던것 같다.
공연법 개정 이후의 연극의 난맥상을 우려한 평론가들의 모임이 있었고, 곧이어 각 극단대표들이 모여서 연극계가 당면한 문제점들에 대처하기위해 머리들을 짜냈다. 각 일간신문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연극의 불황, 저질연극, 관객부재등의 제목을 주먹만한 활자로 뽑아낸것도 이때였다.
극단적인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정상적인 문화현상의 일부로서의 연극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연극이 독자적인 예술형식으로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줄거리만 같으면TV드라머와 영화와 연극의 차이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나날의 생활과 연극이 너무도 유리되어있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관객층이 대학생들이라는 그나마의 전제가 있었고 그런 전제하에서의 작품성정과 기획이 이루어졌었다. 비록 제한된 관객층이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연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축적된 경험」 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관객에게는 그나마의 전제조차 적용할 수 없다. 들뜬 고교생이거나 할인권에 끌려들어은 뜨내기관객이 대부분이다. 평생에 한두번, 아무런 동기나 목적없이 극장 문턱을 넘는 관객을 대상으로 정상적인 연극이 이루어질수 있을까?
물론 이런 현상의 주된 책임은 볼만한 연극을 못 만드는 연극인들에게 있으며 그 원인은-연극교육, 국가, 재단등의 재정적 지원등의 근본문제와 함께-다시 열거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없이 지적되어왔다.
이처럼 뛰어난 공연의 결핍, 연극형식에 대한 축적된 경험의 부재, 그리고 연극과 일반인들과의 유리현상이라는 고리는 하나의 악순환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계속되는한 우리 연극계는 현재의 카오스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최근 새로이 지적될 수 있는 연극계의 현상은 이러한 근본적 악순환과 카오스에 비하면 별로 문제삼을게 못된다. 잘 알려진 영화배우나 탤런트를 기용하여 관객을 동원하는 스타시스팀이나 고교생들의 단체관람, 그리고 할인권과 동반권의 남발등이 지적되는 문제점들이다.그러나 공연된 작품의 수준이 그 공연에 온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극장용 찾게할 수준이었다면 그것으로 우선 족하지 않을까.
남발되는 수준미달의 공연에 대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기성극단들의 압도적으로 훌륭한 공연들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대책이 될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과장되고 왜곡된 과잉공연에 부실공연이라고 하겠다. 기대감에 대한 배반감이야말로 연극계의 악순환을 가장 부채질하는 일이기때문이다.
지난 여름 신문들이 연극의 침체와 저질성에 대해 대서특필했을때 연극인들은 차라리 무관심을 바랐다. 이런 뿌리깊은 악순환의 국부적 단면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공언안내나 극평들에 보다 지면을 할애해주었으면 하는것이 연극인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연극의 전통자체가 미미한 이땅에 특별히 저하될 수준도 없으며 어느날 갑자기 연극의 황금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꾸는 것도 무리다..
거대한 일상적 위력으로 생활을 지배하고있는 TV와 달리, 연극은 관객의 선택을 기다릴수밖에 없다. 적어도 관객에게 「선태」당할수 있는 연극-이런 수준의 연극을 가능한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만드는 일이 올가을 시즌에 역시 연극인이 맡은 과제일 것이다. 관객이 좋은 연극을 만들수는 없겠지만 저질연극을 도태시킬 수는 있다. 연극을 잘 만들고 못만드는것은 연극인의 책임이지만 연극문화를 죽이고 살리는 마지막 열쇠는 관객이 쥐고 있다. 그리고-다행히도-궁극적인 의미에서의 「관객」은 연극인보다 현명한 것이다. <필자=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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