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기존 틀' 깨야 진보 가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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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뉴턴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우주론으로의 혁명을 일으킨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1916년에 발표됐다. 그는 이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이론적 결과를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놀라운 것은 중력장 안에서 빛이 휜다는 것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년 5월에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개기일식에 대한 정교한 관측이 이뤄졌으며, 이는 태양 근처를 지나는 빛이 정확하게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만큼 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관측을 바탕으로 학계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확증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론물리학의 내용이 옳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실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론이 예견하는 결과가 설령 지금 실험으로 확인됐다 해도 이 이론과 위배되는 관측 결과가 이후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이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측 결과가 이론과 일치하더라도 이는 그 이론이 '아마도'를 의미할 뿐이며, 만일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니다'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이론이 '아니다'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손을 들어주는 일이 없는 자연이나 실험을 그는 '냉엄하고 불친절한 심판자'라고 표현했다.

이런 생각이나 업적은 철학자 칼 포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을 든다. 반증 가능성이란 실험이나 관측에 의해 이론이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점성술에서의 예언은 엄밀한 의미에서 반증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이와 달리 좋은 과학이론에서의 예측은 반증 가능성이 큰 대담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이 태양 근처에서 휜다는 일반상대론에서의 예측은 반증 가능성이 대단히 큰 것이다. 빛이 직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당시의 배경 지식에 비춰볼 때 이 이론은 아주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천동설이 지배적 세계관이었던 때에 나왔던 지동설이나, 원격 작용을 인정하지 않던 때의 만유인력, 창조론을 믿고 있던 때의 진화론, 뉴턴 역학을 믿고 있던 때의 양자역학이나 상대론 등은 모두 아주 대담한 이론들이었다.

포퍼는 이런 대담한 이론들이 관측으로 검증될 때 과학은 크게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반증 가능성이 큰 대담한 이론이 확증된다는 것은 우리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던 지식체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래서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 큰 가설이 검증될 때와 반증 가능성이 낮은 가설이 반증될 때에 과학이 크게 진보한다고 보았다.

선불교에서는 기존의 지식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하여 부처가 설한 경전조차 읽지 않게 한다. 어떤 탁월한 것이라도 그것이 일단 고착화되면 세계를 제대로 보는 데는 장애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라'고도 한다. 어떤 권위에도 의지하지 말고 맑게 깨어 있는 예지의 힘을 자기 스스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분야이든 기존의 틀을 버리고 새로운 틀을 확보할 때 의미있는 진보가 가능할 것이다. 이에 의해 우리는 그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과학에서의 이런 과정을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이라고 했다.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