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4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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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왕노파가 서문경과 금련을 번갈아 쳐다보며 비씩 웃음을 흘렸다.

"어르신도 이 부인을 만난 적이 있을 걸요. 얼마 전에 어르신이 어느 집 처마 밑을 지나다가 발을 받치는 대나무 장대에 머리를 맞은 적이 있지요? 나도 옆에서 보았잖아요."

"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럼, 그때 그 부인이?"

서문경이 새삼 아는 척을 하며 금련을 다시금 여겨보았다. 금련도 서문경을 이제야 알아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걸 어떡하나. 그때 제가 그만 크게 실례를 범한 그 분이시군요. 제 허물을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난 거지요. 더 이상 괘념하지 마시오. 아무튼 한번이라도 안면이 있는 부인이 이렇게 할멈을 도와주니 반갑소."

"우리 이러지 말고 여기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바느질은 잠시 쉬고."

왕노파가 바느질감을 한쪽으로 치우고 서문경과 금련을 탁자 의자에 앉히면서 자기도 작은 의자를 끌어당겨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런데 어르신, 요 며칠 동안 왜 우리 찻집에 들르지 않으셨어요? 어르신이 안 오시니 이 늙은이가 적적했잖아요, 후후."

왕노파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서문경을 향해 눈웃음을 치며 킥킥거렸다.

"굳이 내가 안 와도 할멈한테는 다른 남자들이 많이 있잖소? 내 농담이 너무 심했나. 사실은 큰 딸 시집 보내는 일로 요즈음 좀 번거로웠소. 동경팔십만금군의 양제독 친척인 진씨 댁과 혼담이 오가고 있거든요. 진경제라고 그 댁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나이 열일곱에 아직 과거에도 급제 못하고 학당에서 공부하고 있소."

"그럼 중매쟁이가 혼담을 진행시키고 있을 텐데, 어르신은 왜 나에게 중매를 부탁하지 않으셨나요?"

서문경은 속으로는, 내 중매를 부탁했는데 딸 중매까지 부탁할 수 있나 하면서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 댁에서 먼저 문수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는 뜻을 전해 와서 혼담이 오간 거요. 그러니 자연히 문수라는 사람이 중매쟁이가 된 거죠. 우리 쪽에서는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드는 장신구 행상 아주머니를 공동보증인으로 세웠어요. 설씨라고 있잖아요."

"그 여자요? 장신구 하나 팔면서 온갖 아양을 다 떠는 여자 말이죠? 어르신이나 마나님도 간드러진 그 여자 말솜씨에 넘어갔군요."

"나보다도 우리 마누라가 넘어간 거지. 그럼 공동보증인을 할멈으로 바꿀까? 남자 쪽에서 예물이 올 때 할멈이 오도록 해요."

"아이구, 됐어요. 내가 농담을 한번 해본 거예요. 우리 중매쟁이들은 신분이 변변치 않지만 상도(商道)만은 서로 지키려고 하지요. 한 중매쟁이가 애써서 엮어놓은 일에 다른 중매쟁이가 끼어들면 안 되죠. 그렇잖아요, 부인?"

왕노파가 슬쩍 금련을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럼요. 속담에도 '장사하는 사람은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當行厭當行)'는 말이 있잖아요. 자기가 장사하고 있는데 똑같은 장사가 그 자리에 끼어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서로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자 하는 것이 상도라는 거 아니겠어요?"

서문경은 금련이 말도 조리있게 잘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감탄하였다. 이 여자를 얻으면 자기가 하는 생약 장사도 더욱 번창할 것만 같았다.

"남편은 무슨 장사를 하나요?"

서문경은 금련이 누구의 아내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슬쩍 질문을 던져보았다.

"부끄워서 말을 잘 못하겠네요. 시장에 나가 호떡을 팔고 있어요. 장사도 시원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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