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도청 내용 DJ엔 보고 안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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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 MBC 기자가 5일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건네받아 방송한 경위 등을 조사받기 위해 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안기부(현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수사가 김영삼(YS) 정권에 이어 김대중(DJ) 정권으로 전면 확대되고 있다. 불법 도청이 YS 정부의 안기부뿐만 아니라 김대중(DJ) 정부의 국정원에서도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 천용택씨의 뒷거래 의혹=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1999년 12월 안기부 불법 도청 조직인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구속)씨로부터 불법 도청 테이프와 녹취 보고서를 돌려받고서도 공씨를 사법처리하지 않은 배경은 의문이다. 국정원 측은 "미림팀 도청 자료의 외부 유출 사실이 알려질 경우 파장과 안기부의 위상 실추를 우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씨는 당시 도청 자료를 반납할 때 "천 전 원장과 관련된 것이다. 직접 갖다주는 게 좋을 것"이라며 테이프 2개를 함께 제출했다. 공씨의 말은 테이프에는 천 전 원장과 관련된 내용이 담겼다는 뜻이다.

당시 국정원은 공씨가 운영하는 이동통신 영업대리점을 통해 국정원의 국제전화와 시외전화 회선을 ○통신으로 변경해 사업상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테이프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테이프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등을 검찰이 밝혀야 할 대목이다.

◆ 도청 보고 라인은=YS 때는 미림팀이 생산한 도청 정보는 곧바로 오정소 당시 대공정책실장에게 전달됐다. 오씨는 이를 공식 보고라인이 아닌 고교와 대학 동문인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YS의 차남 김현철씨 등 비선 라인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오씨는 "공씨로부터 도청 테이프와 관련된 보고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겠다"면서도 비선 라인 보고 여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DJ 때는 공식 보고 라인을 통해 국정원장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건 등으로 이어지는 국정원장들이 DJ 측근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3월 불법 도청이 중단될 때까지 도청을 한 부서가 어디인지, 보고 라인은 누구인지, 도청 자료는 어떻게 활용됐는지 등은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 불법도청 자료 폐기됐나=국정원은 발표에서 미림팀이 생산한 테이프는 전량 소각 처리해 국정원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또 DJ정부 시절인 2002년 3월까지 관련 자료를 모두 삭제했다고 강조했다. 어떤 불법도청 자료도 남은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YS 때 미림팀과 같은 조직이 고급 한정식집이나 호텔 등에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상대로 불법 도청을 했다면 그 자료가 없을 수가 있겠느냐는 의심이 많다. 검찰은 실제 도청 담당 부서가 어느 곳이었는지, DJ 시절에 생산된 불법 도청 테이프가 존재하는지 등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다.

◆ 국정원 압수수색하나=검찰은 불법도청 자료가 실제로 전부 폐기됐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에 대한 현장 확인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 내부의 불법 도청 행위와 관련된 장소에 대해 압수수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의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해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정원은 2001년 말 통신비밀보호법이 대폭 강화되고 이듬해 3월부터 법이 시행되면서 휴대전화 도청 장비 등 모든 도.감청 장비를 국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고, 이때 신건 국정원장의 지시로 감청장비 등 일체를 파기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국정원 해명의 진위도 검찰이 가려야 한다.

◆ YS.DJ 소환조사 할까=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YS 때 미림팀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는 94년 6월 팀이 재구성돼 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활동을 중단하기까지다. 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 내부의 동향과 YS.DJ 측근 인사 및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 등 주요 인사의 동향이 주 대상이었다고 한다. 또 DJ 정부 때는 국정원 내 과학보안국이 이 같은 도.감청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당시 YS와 DJ가 불법 도청 사실을 알고 묵인했다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pinej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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