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천 따지…천자문의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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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천자문' 첫머리인'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을 재치있게 바꾼 눌은 밥 타령이 구수하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만 '천자문'은 그리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다.

지은이 중국의 주흥사(470?~521)가 하룻밤에 편집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하얗게 세서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 부른다는 옛 얘기가 전해내려온다. 1000자 250구 125절에 자연.역사.철학.천문.지리.인물.윤리.도덕.처세 등 인간사를 두루 뀄으니 '천자문'은 한자 문화권이 손꼽는 종합 교양서이자 서사시라 할 만하다.

요즈음 '천자문'을 떼는 학생은 드물다. 만화로 푼 '마법 천자문'이 인기를 끄는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천자문'은 어떤 뜻이 있을까.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막을 올리는 '하늘천 따지-천자문과 조선인의 생각.공부.예술'이 실마리를 던져준다. 조선조 500년과 개화기.일제시대에 생산된 100여 종의 천자문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천자문'얘기를 시작할 수 있는 멍석을 깐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보급된 '석봉 천자문'을 쓴 조선조의 명필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의 작고 400주년 기념전으로도 뜻이 깊다. "오늘의 우리를 형성한 뿌리를 더듬다 보면 '천자문'이 상징하는 한자를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이 이동국 큐레이터가 내건 기획 이유다.

'천자문'을 중심으로 본 조선시대의 교육 교재, '천자문'과 인쇄문화, '천자문'과 서체, '천자문'과 한글, 문인과 도학자의 '천자문'등 전시물만 살펴도 숨이 차지만, '천자문'을 수묵애니메이션과 춤과 게임으로 푼 체험 공간에 탁본 찍기도 지나칠 수 없다. 20일과 9월 10일 ''천자문'을 통해 본 동양인의 학문.예술.세계관'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9월 19일까지. 02-580-13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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