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교육 혁명' 전국으로 퍼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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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설동근(57) 부산교육감이 2일 대통령 자문기구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내정됨에 따라 '부산발 공교육 혁명'이 전국에 확산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교육혁신위원장은 한국 교육이 가야 할 일관성 있는 청사진을 구상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자리다. 따라서 학생을 최우선시하고, 교실수업을 뜯어고치고, 학교의 벽을 허무는 등 설 교육감이 부산에서 이뤄냈던 공교육 혁명을 전국으로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청와대에서 내정 사실을 발표한 2일 설 내정자는 싱가포르 래플스 주니어 칼리지(영재고교)를 방문 중이었다.

"이 학교 졸업생 25%가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 명문대학)에 가는 비결은 뭔가요."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서 영재학생을 선발하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시스템을 배우느라 한창이었다.

내정 발표 후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2008학년도 대입 개혁이 요구하는 내용으로 교실 수업을 혁신하고, 독서 교육과 봉사활동 강조 등 초.중.고 교육 정상화에 뭔가 기여하라는 게 임명권자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정책의 실천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 평가'에 대해서도 "학부모 등의 의견을 들어 일선에서 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는 교육에 대해 '가망 없다'고 속단하고 여건 탓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교육 수요자나 현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안을 내놓는다면 중병에 걸린 공교육도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설 내정자는 마산고와 부산교대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6년여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연안해운회사에 들어가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는 등 교육계에서는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부인 박현자(55)씨가 부산 양운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교육자 가족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 대표 시절 현장을 몰라서는 이익을 낼 수 없다는 걸 배웠다"며 "사업이든 교육이든 현장의 반응과 수요자의 뜻을 읽고 실제로 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경력에 걸맞게 그는 2000년 10월 부산교육감이 된 뒤 항상 '현장 위주'를 강조해왔다. 우수 교사의 릴레이식 공개수업으로 학교 벽을 허물며 학부모에게 수업 참관권을 주고, 병원학교를 만들어 교사를 파견하는 등 사교육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공교육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그는 또 "투입이 있으면 산출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며 직원들을 다그친 것으로 유명하다. <본지 '부산발 교육혁명' 시리즈(6월 13~17일) 참조>

이러한 현장 위주의 교육 개혁안이 부산에서는 큰 효과를 거둬왔다. 대학 진학률이 좋아지면서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도 여러 자리에서 "부산 교육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설 내정자의 '공교육 살리기' 경험이 전국적으로도 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교육혁신위원회가 지난 1년여 동안 교육인적자원부와 마찰을 빚으며 외톨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그동안 위원회가 내놓은 여러 구상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정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는 후문이 끊이지 않았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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