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연정보다 선거구제 논의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연합정부(연정)를 제의하고 그 대신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할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총리 지명권을 한나라당에 주고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일축했지만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 통치 구조하에서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제안이라고 보인다.

▶ 이관희 경찰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한나라당 중심의 내각이 내각책임제에서와 같이 행정권 거의 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는 근 3년이나 남았는데 그것을 위해 실질적으로 정권을 넘겨 준다? 노무현 정부가 벌여 놓은 일도 수두룩하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정권욕이 있다 하더라도 구차하게 현 정부의 뒤치다꺼리를 하려 할까. 그러니 위헌, 합헌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래저래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렇듯 현실성 없는 제안을 왜 내놓았을까. 경기 침체와 부동산 정책 실패, 그리고 러시아 석유 유전, 행담도 개발 등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을 일단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읽혀진다.

사실 연정과는 별개로 선거제도 개혁은 꼭 필요하다. 현행 1인 소선거구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인물 중심의 정치와 지역정당체제를 지속시키는 중요 요인이다. 게다가 현행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국회의원선거제도는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 지난 제17대 총선 결과를 보면 38.3%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 열린우리당이 50.8%의 의석을 차지한 반면, 한나라당은 35.8%에 40.5%, 13.0%의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단지 3.3%의 의석률을 보였다. 이처럼 현행 선거제도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률의 괴리라는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혁하기 위해 현재 여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방안으로는 여러 선진국에 비해 전체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다는 것을 전제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100석까지 늘리고 현 243석의 지역구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며 현행 전국 단위 정당명부제를 5, 6개의 권역별 정당명부제로 바꾸는 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선거제도를 채택하든 각 정당과 현역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이니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는 검토를 해야 한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획정하게 되어 있으므로 지금부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덧붙여 선거제도는 개헌 문제와 연결될 수 있고 2008년에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겹치는 만큼 개헌논의도 함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그리하여 국회 내에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2006년 말까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뒷받침하고 정치 개혁을 선도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해 줄 것을 제안한다.

개헌 논의가 너무 일러 민생 문제에 소홀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으나 지금과 같이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국회 내에 제도화하여 차분히 논의하면 별문제가 없다. 내년 6월 지방자치선거도 있는 만큼 지금부터 조사 연구를 하는 것이 시의적절하고 정략적 이용 가능성도 줄어든다.

다만 개헌 논의에는 대통령 임기 조정 등 통치 구조만이 아니라 국정 감사.조사권 행사의 합리화, 헌법재판소의 구성, 영토 조항, 지방자치권 확대, 검사의 영장청구권, 군인.경찰에 대한 2중 국가배상 금지, 경제 질서 등 기본권 조항에 관련된 조문까지 폭넓게 헌법 개혁 차원으로 연구 검토되어야 한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