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의와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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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택시합승이 9월부터 전면 금지된다.
그것은 우리 교통행정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 조치가 될 것이다. 77년부터 시행되었던 「합승묵인」방침의 철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행정조처다.
변의주의 적당주의적 관행의 철폐를 통한 원칙주의 질서주의로의 회귀라는 의미다.
물론 현실의 삶은 자로 재거나 저울로 달듯이 늘 정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준거가 되는 자와 저울은 꼭 필요한 것이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공평무사하게 적용되는 규범이 없이는 사회의 올바른 운행이 불가능하다.
또 규범이 있더라도 유명무실하거나 효용을 잃는다면 그것은 물론 무의미한 것이다.
그점에서 도시교통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택시가 본래의 임무와 서비스에 충실할 수 있는 본연의 규범을 찾게된 것은 우리사회운행에 커다란 진전으로 볼 수가 있다.
사회의 정상적인 준행이란 것은 특별난 것일 수 없다. 규범과 질서에 따른 순리적 흐름일 뿐이다.
택시운전기사가 승객의 요청에 의해 원하는 장소까지 정해진 요금에 따라 충실한 서비스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운행의 실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택시의 정상적인 운행에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행의 실마리를 얻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택시의 합승은 비정상적인 운행이다. 원칙과 정상성을 깬 편의주의의 일시적 규범이다.
그것은 물론 그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갖고 있다. 에너지 절약과 도심교통난의 해소라는 명분이다.
승객은 변두리 주택가에서 도심까지 미터요금의 절반 값으로 갈 수 있고 승차대에서 가물에 콩나듯하는 택시를 기다리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모 택시운전기사는 절반 값 승객을 몇 사람 합승시키면 미터요금보다 휠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로해서 형성된 「택시합승의 윤리」도 있었다. 절반 값에 타는 승객의 윤리와 수입을 더 거두는 운전기사 사이에 양해가 형성되는 인정의 윤리다.
하지만 그같은 변칙과 편의주의가 결국 무리와 무질서와 비윤리를 초래한다는 것은 망연한 일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시민들은 합승에 너무나 시달리고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사명으로한 운전기사가 승객위에 군림하는 「희극」이 다반사가 되었다.
승객의 양해 없이 합승손님을 부르는 것은 보통이며 제멋대로 행로선정과 정거행위, 합승요금 아닌 미터요금요구등은 그 일례라 하겠다. 그것은 바로 횡포와 비리이며 불의인데도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제한받으며 굴욕을 참기도 했다.
그로해서 생기는 시비도 많았다. 승객과 기사사이, 승객과 승객사이의 불필요한 실랑이는 이게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
교통무질서도 더이상 용납되어선 안된다. 승차대에 줄을 선 승객사이로 합승승객은 줄을 흐트러뜨린다. 줄은 어느새 없어지고 길바닥에 나서 택시를 잡는 승객들의 아귀다툼 속에 차선은 아랑곳 않고 빠져들어 오는 택시의 횡포도 이젠 더이상 보아선 안되겠다.
택시합승의 금지는 바로 그같은 무질서와 무원칙을 이사회에서 몰아내는데 절대로 중요한 조치다.
그것은 물론 당장 불편과 불이를 가져올 것이다. 승차대에서 기다리는 줄은 좀더 길어질 것이고 택시기사의 수입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것은 일시적 변의나 진실호도의 논리가 아니다. 원칙과 정의가 살아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떳떳하게 살수 없다.
시민들이나 택시업자가 그런 자각아래 일시적 손해를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시민들이 자기의 권리의식을 높이며 나아가 우리사회에 사회정의를 정립하기 위해서 그 용기는 필수적이란 의식도 있어야겠다.
그런 용기와 의식없이 이 사회는 결코 밝은 내일을 기대할수 없다.
택시합승의 전면금지는 그런 차원에서 시민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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