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아들 찾은 「생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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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승운이가 낳은 정 품으로 돌아왔다.
국내 재판사상 처음으로 유아인도 판결이 내려졌고 인격체에 대해서도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유권해석이 처음 내려졌던 승운군(2·중앙일보 4월15일·6월17일보도)이 혈육의 정과 인륜을 따라 생모에게 안긴 것이다.
승운군이 생모 조경미씨(27·가명·인천시숭의동)에게 안긴것은 지난달 24일. 수원지검 인천지청 6호 검사실에서 생부 이민수씨(30·가명·인천시송림동) 측으로부터 아들을 건네받은 순간 조씨는 2년동안 참고 참았던 모정이 와락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조씨의 품에 안긴 승운군이 입회검사 앞에서 낯이 설어 두리번 거린 것음 10여분. 승운이는 금새 생모의 볼을 쓰다듬고 껴안으며 재롱을 떨었다.
승운군을 데려온 이틀후인 26일은 마침 두돌. 조씨는 친정집에서 큰잔치를 벌였다.
승운군은 달라진 환경,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전혀 낯선 기색이 없어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위에선 핏줄을 속일 수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조씨는 승운이가 그동안 영아원·양부모·생부·생모에게로 전전하면서 말도 재대로 못하는 나이에 환경적응력만 생긴 것같아 애처로운 마음이 앞섰다고 했다.
조씨가 승운군과 헤어진 것은 80년7월29일. 낳은 지 3일만의 일이다.
이씨와 맞선을 보고 결혼을 약속, 아파트를 얻어 동거중에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이씨는 집안에서 반대한다고 결혼할 뜻을 보이지 앉았다.
조씨는 승운군을 안고 이씨집으로 들어갔으나 아이만 빼앗기고 쫓겨 나왔다.
조씨는 혼인빙자간음으로 이씨를 고소, 이씨는 구속됐고 보름만에『아기를 아버지 이씨가 맡아 입적시키고 기른다』는 조건으로 합의해 풀려났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뒤 아기가 이씨집에는 없고 이씨집 호적에도 올라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해 12월 경찰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승운군은 아버지 이씨가 데려간지 보름도 채 안돼 인천시용현동 해성영아보호소에 맡겨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씨는 아들을 직접 키워야겠다고 결심, 81년1월 수원지법 인천지원에 유아인도소송을 냈고 지난 4월15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승운군은 영아보호소에서 자식이 없는 이모씨(39·서울양평동)에게 입양, 이씨의 친아들로 호적에 입적됐다. 조씨는 양부 이씨를 찾아 아들을 돌려줄 것을 애원했으나 이씨는 『3천만원을 줄테니 포기하라』며 오히려 조씨에게 부탁해왔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좋아한 것도 잠시, 양부 이씨가 아이를 친부 이씨에게 돌려줌으로써 조씨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조씨는 다시 생부 이씨집에 찾아가 사정을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 동안 집달관들은 『생명체인 어린 아기를 강제집행할 방법이 없고 전례도 없다』며 집행을 못한 채 대법원에 질의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16일 유아인도의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조씨는 강제로라도 아이를 뺏어올 결심으로 생부 이씨를 영아약취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씨집에선 아이를 친척집에 두고 없다고 빼돌렸다.
아이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 거제도에도 다녀오고 이씨집을 여러차례 찾으면서 주거침입·폭행치상 등으로 이씨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조씨의 끈질김에 이씨측에서도 아이에게 강제집행이라는 불행을 겪게하는 것보다는 순순히 돌려주는게 낫다고 판단, 손을 들고 말았다.
조씨는 인천지청에서 영아약취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이씨에게 『양육비는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줬다.
『1년여 동안 길러준 양부모에게 가장 미안해요』조씨는 승운군이 심한 개구장이이면서도 장난감을 제자리에 둘 줄 알고 말을 잘 듣는 것은 양부모의 알뜰한 교육 때문이라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양장점을 혼자 경영하고 있는 조씨는 앞으로 결혼할 생각은 없고 승운군을 키우는 재미로 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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