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검찰 "내용 비공개, 등장 인물은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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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은 비공개, 도청 대상자의 명단은 공개 '.

안기부의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의 팀장 공운영(58)씨 자택에서 압수한 불법 도청 테이프 274개와 녹취록 13권의 공개 여부를 놓고 검찰이 이같이 내부 방침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도청 내용을 공개할 경우 검찰 스스로 통신비밀보호법(제16조)을 위반하는 것이고, 도청당한 피해자에게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명예훼손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혼란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수사 절차상 도청 대상자 명단 등의 공개는 필요하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공씨의 구체적 혐의를 입증하려면 피해자 신원 등의 일정 부분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 "도청목록과 대상자 적시해야"=형사소송법상 공소장을 쓸 때 '범죄의 일시.장소와 방법을 명시하여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254조4항)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공씨가 제3자에게 넘긴 도청 자료가 있다면 최소한 누가, 어디서, 언제 이야기를 나눈 자료인지는 공소장에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공씨가 재미동포 박인회(58.구속)씨 등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설명한 사실만 드러나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돼 박씨 등이 들었던 내용 목록은 공소장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박씨 등과 테이프 내용을 공유한 시점은 공씨가 국정원을 퇴직한 1999년 12월 이후로 통비법상 처벌이 가능(공소시효 7년)하기 때문이다.

공씨가 국정원 퇴직 당시 국정원에서 보관 중인 테이프 원본이나 복사본을 가지고 나와 보관했을 경우 공씨에게는 업무상 횡령 혐의가 추가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 경우 공소장에는 통상 대상 물품과 등장인물을 기록해 혐의를 특정한다"고 설명했다.

◆ "테이프 발견에서 공개까지 45시간"=검찰이 공씨 집에서 불법 도청 테이프 등을 찾아낸 뒤 공개하는 데는 45시간이 걸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검찰에 불리한 내용을 선별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황교안 2차장검사는 1일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검찰이 공씨의 집.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시각은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수사관 5명은 공씨의 딸 방 옷장 위에 숨겨놓은 종이상자에서 테이프 274개와 녹취보고서를 찾아냈다. '판도라의 상자'를 찾아내는 데 3시간이 걸렸다.

3600여 쪽의 녹취보고서와 테이프를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긴 수사팀은 자료 정리에 밤을 꼬박 새웠다. 안기부 불법 도청자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관련자 신병확보에 나섰다. 관련자의 도주를 우려해 도청 테이프의 발견 사실을 미뤘다. 수사팀은 28일 오전 공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관련자들을 출국금지시켰다. 보안을 위해 사전구속영장 청구 때도 압수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29일 오후 4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수사팀은 도청 테이프의 확보 사실을 발표하게 됐다는 것이다.

장혜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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