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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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한적십자사가 1천만 이산가족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지 벌써 11주년이 됐다. 한국적십자 측의 이같은 제의로 남북간에는 국토분단 4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대화가 시작됐고 모든 국민들은 이것이 조국통일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부푼 기대를 모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73년 북한측의 일방적인 대화중단선언으로 적십자회담은 물론 남북조절위원회의 기능도 정지됐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남북적십자 실무회담도 77년을 마지막으로 무기연기된 채 오늘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흩어진 가족끼리 안부편지 한장 교환하는 일조차 성사시키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국토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수 있을지 민족적 자괴가 앞선다.
일이 이처럼 비틀린 것은 북한측의 완고한 대화거부태도 때문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흩어진 가족끼리 안부편지를 교환하는 일은 이념이나 체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미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되었다는 그들이 남쪽에 가족이 살고 있음이 확인됐다 해서 사회적 동요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더구나 개방사회인 남쪽은 말할 것도 없다.
중공, 소련에 사는 우리 교포가 우리방송을 듣고 편지를 보낸다고 그들 사회에 위해를 끼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분단된 독일민족이 명절 때면 서로 가족과 친척을 방문한다고 해서 어느 한쪽 체제가 흔들린다는 예기도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이산가족찾기운동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제의하는 것은 순수한 인도적인 견지에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뜻이다. 아울러 비록 이념과 체제는 달라도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일깨워주자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간에 이같은 제도를 마련, 운영하는 데서 오는 상호 신뢰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자는 뜻이다.
한국적십자측도『북한측이 인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산가족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적십자측은 이같은 기본인식 아래 남북적십자회담의 무조건 재개, 남북직통전화의 재개통,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기능회복, 그리고 납북선원의 송환 등을 요구했다.
당연한 요구며, 북한축의 성의만 있다면 금방 실현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이북 5도민 중앙연합회는 대북제의 11주년을 맞는 오늘을「이산가족의 날」로 정하고 정부나 대한적십자사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고향과 가족을 찾는 일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이는 북한측이 호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을 마련한 것이며 북한은 이 절실한 민족적 호소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최근 북한은 일체의 대화제의를 거부하며 통일방안으론 그들의 고려연방제만을 고집하고 있다. 일방 그들은 무력을 강화하는데 광분, 최근 한 해외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정규병력도 67만 8천명을 넘고 끊임없이 무력도발의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북한의 주민 병원부담비율은 25명당 1명 꼴로 한국의 63대1보다 훨씬 큰 것이다. 이스라엘의 23대1을 제외하면 세계최고 수준이다.
대화를 거부하고 무력을 강화하는 그들의 속셈은 뻔하나 그것은 착각임이 분명하다. 민족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미망에서 깨어나 하루빨리 민족적 양심을 회복하고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올 것을 재삼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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