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경찰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내무부의 경찰행정 개선방안은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있어 국민의 깊은 관심을 끈다. 그동안 경찰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자질부족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범위 안에서 경찰력의 확보와 경찰공무원에 대한 처우개선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엿보인다.
이 개선안은 우선 일반경찰과 전투경찰로 양분돼 있는 지금의 경찰력구성은 그대로 두고 전투경찰을 작전전경과 의무경찰로 나누어 의무경찰로 하여금 직업경찰을 대신하도록 했다.
이 방안은 의무경찰의 봉급이 순경 (직업경찰) 의 20분의 1 수준으로도 가능하다는데 착안, 절감되는 그 재원을 파출소 운영비 등 경찰의 처우개선에 돌리려는데 한 목적이 있다. 또 3년간의 경력을 쌓은 유자격자를 순경으로 채용하는 제도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번 개선방안의 핵심인 의무경찰제로의 전환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선 경찰의 자질향상 문제다. 육군 신병교육과 12주간의 단기 경찰교육을 받은 경찰관이 시민과 접촉하면서 원만한 대민 봉사행정을 펼 지가 의문이다.
당국은 이들을 순찰 등 단순업무에만 투입한다고 하나 돌발사태에 대처하는 것이 경찰의 가장 큰 업무인 즉, 그 업무한계가 금을 긋듯 선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경찰의 신뢰를 어떻게 정립하는가에 그 성패의 관건이 있다.
총기수유가 자유로워 총기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사회, 테러행위나 폭동이 잦은 사회에서는 일반경찰의 기능 못지않게 전투경찰 (특수경찰) 의 기능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이런 경찰은 군 못지않게 기동력과 용맹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사회는 아직 이런 사회상황에 직면해 있지 않으며, 또 훌륭한 군을 갖고 있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경찰은 최근의 증?재판주의가 교훈하듯 노련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로서의 경찰이다. 미숙련, 경험부족의 주먹구구식 범죄수사에 임하는 시기는 지난 것이다.
범죄의 다양화, 지능화추세에 맞추어 경찰력도 더욱 과학화하고 세련되고, 다기화 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제이다. 경찰력은 이제 양보다도 질을 따져야 하는 시점에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각종 범죄상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의 경찰은「두뇌의 경찰」로서 할 일이 더 많으며, 단순기증과 행정의 경찰로서는 오히려 할 일이 줄어들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찰예산을 확보하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의무경찰제도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봉사경찰과 두뇌경찰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번 경찰행정 개선방안은 좀더 신중을 기할 여지가 많다.
예산이 더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경찰의 계급정년을 조금씩 줄인 것도 유능한 수사경찰을 확보한다는 점에선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 경찰의 자질향상은 부단한 과제이다.
미국의 FBI, 영국의 스코틀랜드야드, 프랑스의 파리경시청 등 세계적인 권위와 신뢰를 갖고있는 유수 경찰들은 우선 원숙한 수사관들의 육성과 확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현재의 채용조건을 도리어 좀더 엄격히 해서 유자격자를 고르고 이들로 하여금 평생을 봉사하겠다는 명예심을 갖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문제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경찰의 헌법적 의무를 어떻게 보다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게 하느냐에 있다. 제도개선의 집점도 여기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