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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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향을 못 잊어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에 대한 향수다.
향수란 인간감정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고속시대를 살고있지만 한결같이 우리를 아늑하게 감싸주는 고향의 정취는 우리의 피곤한 영혼을 얼마나 평온하고 시원스런 휴식을 허락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고향이란 말만 들으면 당장 막혔던 가슴이 툭 트이는 것만 같다. 이는 고향이 가지고 있는 어떤 모성적 포용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향에는 때묻지 아니한 인정이 있고, 값진 슬픔과 기쁨이 있고, 또 조상과 이웃이 있고 우리의 살아온 자취와 꿈꾸는 미래가 아직 거기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난 곳도 고향이요, 또 장차 돌아가 묻히고 싶은 곳도 고향이리라.
나는 올봄 시집 『빛이 고이는 잔』을 발간했다. 여기 실은 내 시의 대부분은 주제가 고향에 관한 것이다.
현대인을 일컬어 실향민이라한다. 실향의 아픔을 간직했기에 고향을 더욱 그리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들 고향을 잃어 버리고 서정과 정서에 메마른 도시생활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뿐인가, 또 현대란 감동이 없는 시대라고도 한다. 시엔트 큰크리트로 포장된 도시, 여기서는 인정스런 풀한 포기도 살수 없이 삭막하다. 이러한 시멘트 문명의 그늘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은 모든 사고가 규격화되고 모든 가치가 상품화된다.
이때 우리는 잊었던 그 고향을 찾고 고향의 달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고향에서 받는 우리의 감동이란 그럴 수 없이 꿈겨운 것이다.
더러는 갈매기날고 통통배 먼 바다 길을 떠나는 하얀 파도 부서지는 바다의 수평선도 있고 모나의 고향처럼 아름다운 계곡과 전설처럼 흐르는 시냇물과 햇빛 부신 푸른 들판과 해거름에 풀을 뜯는 황소의 울음소리에 유년의 추억과 동경도, 탱자꽃 울타리를 넘나드는 고향, 다 떨어진 밀짚모자를 눌러 쓴 허수아비, 여름이면 매미채를 들고 맘껏 뛰노는 코흘리개 꼬마들의 붉게 탄 얼굴들, 이것들은 내 고향, 아니 우리들의 고향의 생생한 모습들이다.
도시 아이들, 유리 성곽속의 도시 아이들, 이들과는 너무나 환경의 격차가 멀다. 어항속의 붕어들이 숲속 달빛어린 호반의 밤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새장의 새들이 어찌 종달새 나는 하늘의 높푸름을 알 수 있을 것인가.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 곧 인간교육의 산교육이다.
잊혀진 친척도 찾아보며 어려움과 가난도 알게하며 교육적 풍토를 뿌리에서부터 조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얽어맨 간섭의 쇠사슬을 풀어주며 아이들을 고향으로 보내어 이 여름을 학교생활보다 더욱 값진 인간성을 체득케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것, 이것이 곧 그들의 일생을 보다 기름지고 운택한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것이 아닐까.

<시인·서울강동구성내동200의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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