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줬다가 돌려받은 개 세 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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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집엔 개가 네 마리다. 살림이 넉넉해 훔쳐갈게 많은 부자라거나 동물을 유달리 아끼는 따뜻한(?)마음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원래 기르던 개가 새끼를 다섯마리 낳았고 그중 두마리는 달라는 사람을 줬지만 나머진 임자도 없기에 그냥 갖고 있다보니 에미 새끼 구별없이 크게 자라 개부잣집이 돼버렸다. 개를 길러 정이 드니 미덥고 대견스러운 반면 신경쓸 일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손님이 오면 일제히 짖어 시끄럽고 민망스럽기도 하고 사람을 물을까봐 조심스러웠으며 배설물에 파리가 들끓어 그것도 일거리였다. 게다가 야박스러운 생각인지는 몰라도 개밥을 줄때마다 쌀독이 푹푹 비는 것 같아 미상불 아까운 생각도 안들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형편에 지나친 것 같아 궁리 끝에 나머지 세마리마저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애들이 학교에서 오자 난리가 났다. 내 루루, 내 캉캉, 내 쫑(개이름)내놓으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징징 운다.
꼴이 나서 저녁도 굶고 시위를 해봤자 며칠 안가려니 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애들이 안보였다. 여기저기 애들을 찾아 나섰더니 우리 루루를 가져간 집 앞에서 문틈으로 안을 엿보고 있었다. 우리 개 잡아먹을까봐 감시하는 거란다. 어이없어 애들 머리통을 쥐어박다가 문득 애들에게 아무 꿈도 줄 수 없는 살풍경한 엄마구나 하는 자책이 가슴을 때린다.
『엄마두 사람이야? 여지껏 우리 식구였던 개를 쌀 아깝다구 남 줘?』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그런거란다 하고 애들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우리들이 오늘부터 밥 조금씩 먹을께, 우리밥으로 개 주면 되잖아 엄마. 개 도로 찾아와.』 야단을 맞으면서도 아침저녁 개를 보러가고 문이 박박 긁히는 소리나 나가보면 개들이 도망쳐 와있고 이런사태의 되풀이 끝에 개를 가져간 사람들이 도로 개를 갖다 놓아버린다. 할 수 없이 개 네마리를 다시 기르게 됐는데 또 일이 생겼다. 쫑이 시름시름 기운을 못차리더니 축 늘어져버린 것이다. 가축병원엘 데려가니 폐렴이라고 입원을 시키란다. 어떡해야 좋을까? 개를 팔아봤자 1만원도 받을까 말까한데 그 예닐곱 배를 투자한다는게 어리석어 보이는 나의 비정함을.
한없이 마음이 아프고 가여우면서도 결단을 내릴 수 없는 하루하루가 채찍처럼 나를 괴롭힌다.
아이들은 벙어리저금통을 털며 자기들이 아픈것 보다 더 야단이다.
그래 입원시켜 우리 쫑의 쾌유를 빌자 이렇게 메마르게 닳아빠진 엄마가 정말 부끄럽구나.
돈 칠팔만원 보다 따뜻함을, 인간적인 그 무엇을 잃는다는 건 더욱 슬픈거란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가축병원을 찾았다. 아이들이 활짝 밝게 웃는다. 그래, 너희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엄마가 돼보고 싶구나. 우리 모두에게 꿈이란 소중한거야. 그것을 잃는다는 건 무척 쓸쓸한 거란다.<서울 도봉구 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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