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중동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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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란이 이라크를 침공한 당장의 목적은「사담·후세인」대통령을 밀어내고 이라크에 친 이란정부를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그런 전쟁목적이 달성되면 그 결과는 이라크의 정권교체로 끝날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의 난파 같은 중동사정이다.
이라크는 지금 아랍권의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대립의 무대이고, 미국과 소련의 경쟁의 대상이고, 이란의 혁명수출을 저지하는 방파제다.
따라서 이란이 이라크를 친 이란 위성국가 비슷한 나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이란과 시리아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소련의 영향력이 크게 신장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시리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여 팔레스타인자치협상의 전망은 한층 흐려지는 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란-이라크 전에서 이란이 승리하는 사태를 가장 심각하게 걱정하는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같은 페르시아만일대의 산유 군주국들이다.
「호메이니」는 회교혁명이 성공하면서 지금의 왕국과 토후국들을 이슬람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수출을 선언했다. 이란은 이라크를 혁명수출의 기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라크의「후세인」대통령은 22개월 전에 이란에 전쟁을 걸어 화를 자초한 꼴이 되었다.
이란에 회교혁명이 성공한 직후 이란의 석유수출이 크게 줄었다. 그 결과 이라크는 석유생산을 하루 3백50만∼3백70만 배럴로 늘릴 수가 있었다. 갑자기 늘어난 석유수입으로 야심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한「후세인」대통령은 아랍·중동 권의 맹주가 되고 싶어졌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의 단독강화로 아랍세계에서 고립되고 이란이 회교혁명의 혼란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적으로는 부강하나 군사적인 소국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후세인」을 격려하기에 충분했다.
「후세인」은 79년 대통령이 되면서 그때까지의 친선노선과 아랍강경파노선을 수정하여 수건파의 대열에 가담했다.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PLO 강경파를 축출하고 소련과의 관계를 냉각시키는 조치가 따랐다.
그러나 그가 혁명하의 이란을 과소 평가하여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결과가 오늘의 이란의 역 공노다. 이란은 이라크내의 반「후세인」세력들인 쿠르드족좌파, 이라크공산당, 시아파 이슬람제도들의 봉기를 노려 국경지대에서 최대한의 압력을 가하다가 침공이라는 최후수단을 쓰는 것 같다.
「호메이니」를 비롯한 이란회교지도자들의 집념과 종교적인 열정으로 보아서 휴전협상이 쉽게 성사될 것 같지 않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침략으로 빚어진 사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마당에 또 하나의 열전을 치르는 중동사태는 내일을 점치기조차 어렵다.
이란-이라크전쟁은 포클랜드전쟁이나 레바논사상보다도 다루기 어렵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중재자가 등장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부세계에 의한 집단압력이나 제제도 통하지 않는다.
일반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목적은 너무 추상적이고 정치적이다. 지도자들의 야망의 제단에 이름 없는 국민들이 희생되고, 어쩌면 또 한차례 석유 값 파동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페르시아만의 포연이 하루빨리 걷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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