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노란 키위' 100만불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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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그는 1997년 스물 아홉 처녀 때 외국 업체의 한국 지사 초대 사장이 됐다. 직원 없이 사장만 있는 회사였다. 8년이 지나고 결혼을 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사장이다. 그가 운영하는 한국지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다. 직원도 10명으로 늘었다.

뉴질랜드 키위 마케팅 법인인 제스프리의 김희정(37.사진) 한국지사장의 얘기다.

제스프리 한국지사는 한국에서 뉴질랜드 키위가 많이 팔리도록 홍보.광고를 하고 판매처를 관리한다. 김 사장은 대학 졸업후 광고 회사에 4년간 다녔다. 그러다 제스프리가 한국 법인을 설립할 때 헤드헌터가 김 사장을 찍었다.

김 사장은 "내 일을 해보고 싶었다"며 "제스프리가 마케팅 전문 회사여서 광고 회사 출신인 점에 점수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 전단 등을 만들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과 영등포 청과물 시장 등을 누볐다. 백화점에서는 그 때만해도 드물던 과일 시식회를 하면서 시장을 넓혔다. 2000년에는 속이 노란 '골드 키위'를 들여왔다. 그런데 잘 팔리지 않았다. 2001년 매출이 미화 37만5000 달러(당시 약 4억5000만원)에 그쳤다.

김 사장은 2002년 초 뉴질랜드 본사에 가서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에서의 골드 키위 마케팅 비용으로 100만 달러(12억원)를 요청했다. 다짜고짜 남산골 변부자를 찾아가 "1만 냥만 빌려 달라"고 하던, 옛 소설 속의 주인공 '허생'같은 돌출행동이었다.

'제정신이냐'는 반응이었다. 매출의 7~8%를 마케팅 비용으로 쓰는 게 보통인데, 매출의 세 배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골드 키위가 어린이들에게 좋다고 알리겠다. 한국에서는 그러면 성공한다"고 설득해 100만 달러를 따냈다. 그 해 유명 탤런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적극 공략을 펼쳤다. 2002년 골드 키위 매출은 전년의 다섯 배가 넘는 200만 달러(24억원)를 기록했다. 뉴질랜드 키위 전체 판매도 덩달아 늘어 작년 400억원, 올해 600억원 어치가 팔렸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키위가 제때 오지 않으면 전화로 본사 직원에게 "우리 덕에 월급 받는 것을 잊었느냐"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지사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한다.

뉴질랜드 키위는 현재 수입 키위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전자가 생겼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관세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칠레산 키위다. 김 사장은 "뉴질랜드 키위가 프리미엄급이라는 인식을 심어 칠레산과 차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권혁주,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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